퍼플데이
영화와 관객 그리고 세상으로의 연결
‘나’로 홀로서기
<핑크페미>, <통금>
퍼플레이 / 2019-11-20
여기, 가장 솔직한 ‘나’를 실현하려는 용감한 두 여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페미니스트 엄마의 딸이라는 시선의 압박으로부터의 독립, 여성에게 가해지는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두 사람! 세상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이 내가 나로서 오롯이 존재하기 위한 과정 역시 여성에게는 조금 더 가혹하고 험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의지뿐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 나를 둘러싼 환경 모두 묻고 따져보아야 할 것들이 한 둘이 아니니까요. 11월의 퍼플데이는 나로서 당당히 홀로 서보고자 했던 그러면서 실패하기도 웃기도 울기도 했던 바로 당신들과 함께 합니다. 우리 모두가 끝끝내 공감할 수밖에 없는 ‘1인’들의 이야기가 될, 웃고 울리는 그들의 고군분투! <핑크페미> <통금>과 함께 여성의 독립을 이야기해보아요. |
안녕하세요? 언제나 가까운 여성영화, 퍼플레이입니다.
매월 셋째주 수요일의 퍼플데이! 11월 퍼플데이 상영작은 <핑크페미>와 <통금>이었습니다. 두 영화 모두 ‘나’로서 홀로 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였습니다.
<핑크페미> 스틸컷 ©다음
<통금> 스틸컷 ©다음
김소람 감독은 통금 때문에 괴롭습니다. 자유, 밤거리, 술, 사랑, 새벽…. 여성이 이것들을 오롯이 누리기엔 한계가 존재하죠. 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통금을 강요받아야 하나요? 즐길 권리를 침해당하고, 시공간의 제약을 받아야 하나요? 성인이 된 후 오히려 부모로부터 더 강하게 통금의 압박을 받게 된 감독은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 의문이 씨앗이 되어 영화로 싹을 틔우게 되죠. 감독은 자신의 주변 여성들을 만나 통금을 주제로 다양한 갈래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11월 20일 수요일 <핑크페미>와 <통금>을 보고 여성의 독립과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김소람 감독님을 모셨습니다. 감독님과 함께한 관객과의 대화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
©퍼플레이
26년간 (원가족과 함께) 살았는데 통금에 대한 강요가 심했어요. 제가 고등학생일 때는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12시 넘어서 집에 들어가도 부모님이 터치를 안 했는데, 제가 대학교에 들어간 후 갑자기 변하더라고요. 제가 늦는 걸 되게 싫어하시고, 학교가 멀었는데도 통학을 했어요. 시험 때문에 친구 집에서 자고 가겠다고 해도 먼 거리를 데리러 오실 정도였죠. 그때부터 ‘도대체 통금은 왜 있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날 걱정해서 그런 거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로 인식했죠. 페미니즘적으로 생각하진 못했어요. 그런데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등 여러 일이 발생한 후 주위를 돌아보니 시간과 공간 제약이라는 게 20대 여성뿐만 아니라 기혼여성도 겪는, 그러니까, 여성에게는 되게 만연한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키워드로 여성의 삶을 바라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원가족과 함께 살 때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생기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답답하다고 하셨는데, 독립한 후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사는 것으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통금을 만들게 되셨죠. 그에 대한 답답한 감정을 영화 후반부에 담아내신 것 같았어요.
처음 집을 나왔을 땐 쉐어하우스에 살았어요. 사람들이랑 함께 살기 때문에 (더 열심히) 집안일을 해야 하니 빨리 퇴근을 해야 하더라고요. 부모님 집에서만 나오면 통금에서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집안일을 하게 되면서 느꼈어요. 또 엄마의 희생을 느꼈고요. 두 번째로는, 제가 원룸을 얻고 혼자 살게 되면서 아무리 늦게 들어가려고 해도 밤길이 무서워 일찍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통금은 부모를 설득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구나, 사회적으로 바라봐야 할 문제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요즘도 집에 일찍 들어가려고 하시나요?
제가 운 좋게 행복주택에 당첨이 돼서(웃음). 골목길이 달라졌어요. 뉴타운지구 쪽에 살게 되니까 치안이 달라진 느낌이에요. 아무래도 더 안심이 되긴 하더라고요.
<통금> 스틸컷 ©다음
-친구분들이랑 대화하는 씬 중에서 어떤 한 분의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그분의 실제적인 경험은 한국 밤거리가 안전하지 않다는 거였는데 또 감독님과 대화를 나눌 때는 한국이 안전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본인의 경험과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하시던데, 친구분들이 생각이나 관점이 모두 다른 것 같더라고요. 영화를 촬영하면서 일부러 다른 시각을 가진 친구들을 인터뷰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던 건지, 대화를 통해 친구 분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었는지 또한 궁금합니다.
그 친구가 한국은 안전하다고,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치안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경험(밤에 어떤 남자로부터 언어폭력을 당한 일)을 한 사람이 한국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이 되긴 합니다. 그래서 그 친구와 많이 싸우기도 했어요. 4~5시간을 대화했는데 말하는 것마다 부딪히니까…. 그 친구와의 대화 녹취를 푸는데 1분에 한 번씩 화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다른 사람한테 맡겼어요. 유독 그 친구와의 대화가 도드라져 보이긴 하는데 영화에 등장한 친구들 중 페미니스트라고 할 만한 친국들은 없어요. 가장 쉽게 인터뷰 섭외할 수 있는 게 지인이기 때문에 영화에 친구들이 많이 등장하게 된 것 같아요. 저는 그 친구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줄도 몰랐어요. 서로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요즘에는 연락을 잘 안 하긴 해요(웃음).
-영화 주제가 통금인데, 중간에 워킹맘 얘기가 도드라져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느라 자기 시간을 갖지 못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그게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엔 장편을 만들고 싶었어요. 20대 때 저는 부모님이 통금을 강요해서 시공간의 제약을 받게 됐지만, 기혼여성들은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닌데 (육아나 가사노동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통금을 갖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회가 통금을 요구하는 것으로 시선을 확장해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단편으로 끝내다 보니 워킹맘에 대한 얘기를 더 확장하지 못한 게 아쉬운 부분이긴 합니다. 그래서 다음 영화에서 다뤄보고 싶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제작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이었나요.
힘들었던 건, 그 친구와 대화했던 것이요(웃음). 또 영화를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야 하는 것도 힘들었고, 엄마를 찍는 것도 너무 눈치 보였어요. 영화를 찍던 당시에 엄마가 아팠어요. 그래서 제가 뭘 찍기만 하면 엄청 째려보더라고요. 엄마한테 말 한 마디라도 걸면 뭐라고 할 것 같아서 엄청 멀리서 찍고 그랬어요. 영화에 페미니즘 집회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때도 되게 힘들었어요. 건대 근처의 되게 좁은 길이었고, 금요일 밤 불꽃페미액션에서 달빛시위를 했었어요. 금요일 밤엔 남자 회사원들이 회식 많이 하는데, 그 사람들이 담배를 피면서 째려보더라고요.
<통금> 스틸컷 ©다음
-여성으로서 그리고 페미니스트로서 엄마를 생각하면 많은 감정이 소용돌이치는데요. 제가 독립 과정에서 알게 된 게 엄마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원가족과 살다가 결혼으로 독립하게 된 것이었죠. 여성이 결혼하지 않고 ‘독립’한다는 건 이전 세대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독립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와의 관계 혹은 감정이 변화한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감독님께서는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영화에서 몇 번 이야기하셨는데요. 그에 대해서는 어머니가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도 궁금해요.
저희 집에서는 제가 미움받았던 존재예요.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님은 동생 편을 들고 제 탓을 하니까 너무 화가 나서 집을 뛰쳐나온 거거든요. 영화에 기차가 등장하는데, 그게 시베리아 횡단 열차예요. 그 여행 이후 한국에 오자마자 가방 하나 들고 집을 나왔어요. ‘저는 이 집에서 못 살겠습니다’ 편지 하나 써놓고. 그때 사이가 너무 안 좋았고, 제가 동생과 싸우기만 하면 저한테만 뭐라고 하더라고요. 자초지종을 들어보지도 않고. 집 나오고 거리를 둔 채 5개월간 연락도 안 했더니 부모님이 되게 충격을 받으셨나 보더라고요. 그 이후에는 저한테 조심하는 게 보이고. 역시 떨어져 있는 기간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열차 안에서 가족분들이 감독님에게 ‘넌 독신주의잖아’라고 하거나 감독님 본인이 ‘나는 결혼 안 하겠다’는 얘기를 하는데, 가족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합니다.
저랑 아빠는 싸운 이후로 깊은 대화를 안 해요. 엄마도 아직은 결혼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고요. 그런데 주변에 그런 케이스가 많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바람을 펴서 부부가 헤어지는. 결혼으로 인해 여성이 고통받는 케이스가 많아요. 가까운 분이 고통당하는 걸 보더니 차라리 결혼 안 하는 게 낫겠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퍼플레이
-가족 분들이랑 함께 살다가 어느 순간 독립을 하시는데, 그 과정에서 엄청난 갈등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 영화에는 거의 얘기되지 않고 넘어가더라고요. 가족과 큰 갈등을 겪었던 건 없으셨나요.
싸우던 순간에 카메라 켜는 게 무서워서 찍지 않은 것도 있어요. 아빠랑 격렬하게 싸운 걸 녹음한 것도 있긴 해요. 그런데 <통금>이 사적 다큐멘터리처럼 보여도 사적 다큐는 아니에요. 사적 다큐를 해보려던 적도 있는데 그러려면 영화에 사적인 것이나 속마음까지 넣어야 하니 심적으로 고통스럽더라고요. 그리고 집을 나오게 된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예상은 되잖아요. 가부장으로부터 뛰쳐나오는 맥락을 어느 정도는 유추할 수 있겠거니 하고 넘어간 것도 있어요. 그리고 그것까지 영화에 담아내면 사적 다큐가 되고 제 얘기를 너무 많이 파는 게 힘이 들더라고요. 사실 동생이랑 싸운 걸 넣어보려고 했는데 영화 톤이 많이 달라지고 험악해져서 그냥 빼게 됐어요.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페미니즘 주제로 하고 싶은 생각은 늘 있어요. 그리고 워킹맘에 대해서도 얘기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계속 공부 중이고 논문도 읽고 있어요. 근데 섭외가 워낙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작년에 GV 할 때는 ‘이 친구들 결혼해서 애 낳으면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한 명이 애를 낳을 예정이라 그 친구는 찜해뒀어요(웃음). 그래서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단계예요. 또 하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이 되었는데 할머니에 대한 감정이 여전히 혼란스러워요. 제가 친할머니 손에 자랐는데 친할머니는 저희 엄마의 시어머니고, 그래서 할머니에 대한 저희 엄마의 기억은 별로 좋지 않아요. 그런데 할머니 얘기를 들어보면 할머니도 가부장제의 피해자더라고요. 그래서 혼란스러워요. 할머니를 미워해야 하는지 아닌지. 그래서 그 감정을 (영화를 통해)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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