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플데이

영화와 관객 그리고 세상으로의 연결

우리가 뭘 하든 방해 말고 꺼져!

<방해말고 꺼져!: 게임과 여성>

퍼플레이 / 2019-10-16


2019년 하반기 ‘퍼플데이’ 상영회 주제는 <지금, 당신의 자리에서>입니다. 여성이라는 구획은 많은 공통점을 주지만, 어쩌면 내부에는 그보다 더 많은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 차이로, 자신의 위치에서 고민은 시작되고 이어집니다. 퍼플레이에서 하반기 퍼플데이를 위해 준비한 영화들은 어쩌면 조금은, 그 고민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질문은 무엇인가요? 지금, 당신의 자리에서 이어나가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방해말고 꺼져!: 게임과 여성|감독 섀넌 선-히긴슨|2015|다큐멘터리|미국|76분

안녕하세요? 언제나 가까운 여성영화, 퍼플레이입니다! 10월 퍼플데이 상영작은 <방해말고 꺼져!: 게임과 여성>이었습니다.

<방해말고 꺼져!>는 게임계 내 만연한 성차별과 여성혐오, 성희롱 등을 고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싸우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영화입니다. 2015년 미국에서 개봉한 작품이지만, 영화에서 언급되는 여성혐오 사건들은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그것과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여성 게이머를 향한 성희롱과 언어폭력,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 여성 캐릭터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분석했다는 이유만으로 페미니스트 미디어 비평가에게 가해진 협박 댓글과 신상털기, 사이버 성폭력 등 그 예는 셀 수 없었습니다.

“젖었어?” “섹시해!” “공중화장실에서 하자” “화상채팅 할래?” “한번 하자” “밥이나 해” “내 거 빨아줄래?” “생리하냐?” 남자 유저들이 여성(이라고 생각되는) 유저들에게 보낸 메시지들입니다. 참담한 동시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방해말고 꺼져!: 게임과 여성> 스틸컷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매일 언어폭력이 흘러넘치고 있어요. 여성의 말은 무시당하죠. 여자가 조금이라도 안 좋은 얘길 하면 여성성, 성별을 공격해요. 넌 여자니까 틀렸다고. 여성으로서 당당히 살기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적개심을 없애야 해요.”(영화 속 인터뷰이 중 한 명인 제시카 해머, 카네기멜론대 조교수)

영화를 보며 계속해서 든 생각입니다. 이는 단순히 게임업계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한 성차별, 여성혐오, 강간문화와 연결돼있는 문제라는 것이죠.

이날 영화를 비롯해 게임계 내 여성혐오에 대해 이야기 나눌 손님으로 ‘페이머즈’(페미니스트 게이머 단체) 활동가 분들을 모셨습니다. 이도임, 송사 님과 함께한 관객과의 대화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퍼플레이


-(관객 질문) 저는 현재 게임개발 쪽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게임회사에 다녔는데, 여성 직원을 사무실의 꽃으로 보는 것에 질려서 나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여혐’에 굴복하지 않고 게임업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송사(이하 송): 저는 게임업계에 있진 않지만, 현재 몸담고 있는 직군에서 최근에 노조를 만들었어요.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개인이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제도를 바꾸는 것도 힘이 많이 들죠. 그래서 가능한 한 여성들이 연대해서 맞서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게임업계 분들 사이에서도 연대, 운동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마땅치 않거나 힘든 부분이 있을 수 있어요. 100% 해결책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는 여성들이 어떤 형태든 간에 서로 연대하고 단체의 힘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미래적으로는 가장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질문) 누군가와 함께 게임을 하고 싶은데, 보이스 채팅을 하기가 무서워요. 여성 유저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는 없나요?
송: 온라인 내에서 여성 게이머 커뮤니티를 만들려는 노력은 꾸준히 해왔는데 활동가가 적고 아직은 서툴다 보니 원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게임 할 때 여성 클랜(인터넷 상에서 같은 게임을 즐기는 모임)을 찾아보는 편이에요. 게임 따라 다르지만 여성만 받는 클랜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쪽으로 찾아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페이머즈도 오프라인 행사 등에서 이 영화를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데, 그 이유와 함께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말씀해주세요.
이도임(이하 이): 2017년 11월에 펙타(FeGTA·Feminist Gamers Take Action, 페미니스트 게이머와 여성 게임 개발자의 만남)라는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됐어요. 영화가 미국의 상황을 다룬 거잖아요. 그런데 미국에서 일어난 (여성 게이머를 향한) 성차별이 지금 한국에서도 별다를 것 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걸 영화 볼 때마다 느껴요. 여성혐오 하는 사람들은 다른 게 없다는 걸 느끼죠. 영화를 소개하는 이유도 우리의 현실과 너무 맞닿아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계속해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송: 영화의 후반부까지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그런데 영화를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겠어요. 수명이 깎이는 느낌이에요.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노골적인 장면들이나 (여성 게이머들을 향한 언어 폭력적인) 메시지가 나오잖아요. 그런 걸 볼 때 내가 겪은 일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가 겪는 일이라는 점에서 (분노가 일죠).


<방해말고 꺼져!: 게임과 여성> 스틸컷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페이머즈는 전국디바협회(전디협)에서 시작한 역사가 있는데요. 현재 페이머즈 구성원은 어떻게 되나요?
이: 저는 전디협 때부터 있던 오래된 사람이고요.(웃음) 지금은 10명 정도의 활동가가 함께하고 있어요. 전국디바협회란 이름으로 처음 활동할 때도 10여 명 정도의 활동가들이 모여 시작했죠. 구성원은 바뀌었지만 수는 바뀌지 않았어요. 2016년 12월에 저희 모임이 전디협이란 이름으로 처음 세상에 나오게 됐는데, 그때 즈음 오버워치(팀 기반의 슈팅 게임)라는 게임이 한창 유행이었고 여자 게이머들도 많이 즐겼어요. 그런데 (여성 유저들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영화에 나온 예시와 같은 언어폭력, 욕설, 여성혐오 발언 등을 당했죠. 그걸 견디다 못해 터진 시점이 그때예요. 그 계기로 여성 게이머의 가시화를 추구하고 목소리를 내보자는 목적을 갖게 됐죠. 오버워치 게임 캐릭터 중에 디바라는 캐릭터가 있는데 2070년에 활동하는 여성 프로 게이머라는 설정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과연 여성 게이머들이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겠느냐, 미래의 여성 게이머를 위해 현실을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전디협을 시작하게 됐어요.

송: 전디협으로 활동하다가 이름의 한계를 느낀 시점이 있어요. 오버워치를 하지 않거나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 저희 이름을 들었을 때 ‘그게 무슨 협회야?’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거죠. 가수 협회냐는 말도 들었어요. 이름 안에 갇혀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버워치뿐만 아니라 한국 게임 전체를 아우르자는 뜻에서 이름을 페이머즈로 바꾸게 됐죠. 미래의 여성 게이머를 위해 현재의 페미니스트 게이머들이 기반을 만들어가겠다는 의미예요.

-게임계 내 여성혐오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 게임하며 제가 직접적으로 당해본 건 없었어요. 왜냐하면 제 닉네임이 영어여서 사람들이 제가 여자란 걸 몰랐기 때문이죠. 당시에 ‘옵치하는 여자들’(오버워치에서 여성 유저로 인식될 때 당하는 여성혐오 발언을 제보받아 아카이빙하는 트위터 계정)이라는, 현재는 게임계 내 여성혐오를 고발하는 계정이 있어요. 그 계정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너무 억울한 거예요. 게임은 재밌으려고 하는 건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가해를 당해야 하나 싶었어요. 억울하고 무서웠죠. 저는 아이디 때문에 여자로 인식되지 않아서 여성혐오 공격을 당하지 않았지만 여자라는 게 밝혀지면 그 순간 가해는 저를 향하게 되잖아요. 두렵기도 하지만 곱씹을수록 화가 나서 이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죠.

송: 비디오 게임을 주로 하다가 헤드셋을 끼고 (다른 유저들과 대화하며) 한 게임은 오버워치가 처음이었어요. 여성혐오의 바다였죠. 깜짝 놀랐어요. 부당하게 겪은 일을 알리고, 페미니즘 공부를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에 전디협에 일반 회원으로 들어갔죠. 그래서 활동가로는 연차가 제일 적어요. 활동가들과 친구 관계를 유지하다가 다들 일이 많아 너무 힘들어하길래 조금씩 도와주게 됐고, 정신 차려보니 활동가가 돼있더라고요.(웃음)


<방해말고 꺼져!: 게임과 여성> 스틸컷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페미니스트 게이머 단체로 꾸준히 목소리를 내오면서 들어온 피드백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지금까지의 활동 소감도 말씀해주세요.
이: ‘옵치하는 여자들’이라는 트위저 계정을 지금은 저희가 운영하고 있어요. ‘게임계 내 여성혐오 고발계정’이라는 이름의 계정인데, 오버워치를 하면서 겪은 여성혐오와 성희롱을 여성 유저 분들이 제보해주고 계세요. 꾸준히 들어오고 있죠. 이것도 관심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말고도 단발적으로 오버워치 여성대회를 열거나 게임 리뷰를 하고,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과 함께 한국 게임계를 바꿔나가고 싶어요.

송: ‘게임계 내 여성혐오 고발계정’ 운영뿐만 아니라 (여성혐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성명을 내거나 SNS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어요. 보통 저희에게 들어오는 메시지는 고발이 많은데, 가끔 그런 게 있어요. ‘개인이 목소리 낼 때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데, 단체에서 정식으로 성명서를 내주면 용기를 얻게 된다’고. 그런 말을 들을 때 저희도 힘을 얻죠.

-최근에는 10~20대의 건강한 게임문화를 위한 지침서를 내기도 하셨는데요. 그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얘기는 내부에서 꾸준히 해왔어요. 다른 여성혐오 형태는 학술적 논문이나 저서가 많은데 게임계는 신규 사업이라고 해야 하나, 막 떠오르기 시작한 사업이기 때문에 거기서 벌어지는 폭력의 형태도 새롭죠.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참고할만한 저서나 학술적 논문이 상당히 적었어요. 애초에 게임에 대한 인식이 한국에서 좋지 않아요. 게임은 나쁜 것, 중독적인 것이라고만 여기죠. 그걸 뼈저리게 느꼈던 게, 지난해 7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게임문화를 설명하는 강의를 하게 됐는데 수강생 분들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게임 내에서 이런 식으로 여성혐오가 벌어지는지, 이렇게 다층적으로 문제가 일어나는지 몰랐다’. 게임문화에도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대다수예요.

송: 저희 지침서는 기본적으로 성평등 교육을 하거나 디지털 성폭력을 연구하거나 나이가 있거나 게임에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는 분들을 1차 독자로 삼았어요. 1020 세대의 게이머들이 단순히 게임 안이나 혹은 밖에서, 즉 스트리밍 사이트나 커뮤니티 등 다양한 장소에서 어떻게 여성혐오를 배우고 재생산하는가에 집중하고 아카이빙 하기 위해 만든 자료입니다.


©퍼플레이

-펙타나 포럼 등 오프라인 행사를 계속해서 기획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송: ‘물리적인 공간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같은 시간에 함께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영화에서도 말하잖아요. 온라인상의 활동도 중요하지만 여성들이 오프라인에서 같이 모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받고 계속해서 네트워킹을 지속하고 싶기 때문에 오프라인 행사들을 열었었고, 앞으로도 가능한 한 계속해서 개최하지 않을까 합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요?
이: 여성혐오를 고발하는 사이트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요. 게임계 내 여성혐오 아카이빙 자료를 토대로 여성혐오자를 박제하고 고발하기 위한 사이트죠. 거의 막바지에 있어요. 가장 가까운 활동은 그것이고, 그게 마무리되면 비슷한 활동을 찾아서 또 해나가겠죠. 그걸 마무리하느라 아직 크게 결정해둔 건 없는데 앞으로 계속해서 힘닿는 데까지 활동해 나갈 생각입니다.

송: 사람은 적은 데 비해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보니 늘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데, 저희는 공통된 합의가 있어요. 열심히 일하고 현실을 바꾸는 대신 개인의 삶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밖에서 보면 ‘(페이머즈는) 좀 천천히 가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저희는 최대한 살아남아서 얘기를 계속하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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