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일기장

영화 속 그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스키터의 일기

<헬프>

윤혜은 / 2020-03-05



영화가 끝난 후 영화 속 인물들이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혹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한 적 없으셨나요. <우리들>의 선이와 지아는 화해한 뒤 예전처럼 친한 친구 사이로 돌아갔을까요? <캐롤>의 테레즈와 캐롤은 한집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겠지요? 그들은 자신의 삶을 어떤 색깔로 채워가고 있을까요. 퍼줌이 상상력을 발휘해 쓴 그들의 뒷이야기, ‘그들의 일기’를 보여드립니다.


스키터의 일기

1968년 12월 5일

‘The city seen from the Queensboro Bridge is always the city seen for the first time, in its first wild promise of all the mystery and the beauty in the world.’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스콧 피츠제럴드는 뉴욕이 세상의 모든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격렬하게 약속했다고 썼다. 뉴욕에서 생활한지 벌써 3년째지만 그처럼 경이로운 뉴욕은 좀처럼 만나지 못한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퀸즈보로 브릿지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뉴욕 대부분이 언제나 그렇지만 특히 퀸즈에서 맨해튼으로 넘어가는 도로는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뉴욕이 내게 약속한 거라곤 격렬한 교통체증뿐인 것 같다. 아니, 출근길 정체뿐만이 아니다. 내 삶도 엑셀을 밟을 일 없이 줄곧 서행만 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작금의 미국은 어떤가. 리처드 닉슨1)이 대통령이 된 지 한 달. 그의 표밭이었던 뉴욕은 한 달 내내 축제 분위기다. TV 공개토론을 거부2)한 후보자가 대통령이 됐다. 지난 6월, <하퍼스 매거진>3)에 매일같이 로버트 케네디4) 의원의 추모 기사와 관련 사설을 써 내려갈 때만큼이나 절망적이다.


그의 부고를 기점으로 맨해튼 북부에서는 잠잠하던 흑인들의 폭동이 다시금 발발하기 시작했다. 남부에서 성행하는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그만큼 노력한 백인 정치인도 드물었다. 하지만…… 킹 목사5)가 사망한 지 겨우 두 달 하고도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잔인한 4월이 기어이 여름마저 잡아먹었고 말았다. 엄마한텐 미안한 일이었지만, 올해 여름휴가는 미시시피에서 보내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어려웠다. “그래, 그나마 뉴욕에 있는 게 나을 테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가 위로하듯 말했다.

담배 연기마저 끈적하게 달라붙는 여름날, 심상치 않은 폭동 소식들에 조기 퇴근을 권장하는 날이 많아졌다. 파티션 너머로 누군가 “여름휴가가 따로 없네”라고 말했고, 이내 그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무렵 가끔 꿈에서 같은 장면이 반복되곤 했다. 현실에서와 달리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린다. 돌아본 얼굴들이 전부 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꿈에서 깬 나는 다시금 아침의 퀸즈보로 브릿지 위에 있다. 간밤의 악몽을 회상하다 몇 번은 이렇게 중얼거린 것도 같다. 차라리 지금이 꿈이었으면.

닉슨의 당선 후 뉴욕이 축배를 들었던 데에 반해, 언론은 민주당의 패배를 충격과 공포라고 떠들어대기 바빴다. 솔직히 나는 어느 쪽에도 분노하는 데에 지쳤다.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여론만은 여전히 굳건하고 그것만이 나의 희망이다. 곧 크리스마스이브를 앞두고 아폴로 8호6)가 발사될 예정이지만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는다. 미국의 절반은 전쟁에, 절반은 달에 미쳐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아침마다 의심하는 수밖에. 40년 전, 스콧 피츠제럴드가 약속받은 뉴욕은 진짜였을까?


1969년 9월 12일

영국으로 출장을 다녀온 줄리가 선물을 보내왔다. 소포 안에는 『굿하우스키핑』7)의 과월호 여섯 권이 들어 있었다.

줄리는 출판사 <하퍼 앤 로>의 홍보 담당자인데, 공교롭게도 『헬프』가 그녀의 입사 후 첫 담당 작품이었다. 보통은 출간과 동시에 작가들을 인터뷰 스케줄에 맞춰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는 것이 그녀의 주요 업무였는데, 『헬프』는 철저히 익명을 보장해야 했던 이야기라 아직도 줄리가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작품이다. 덕분에 우리 사이엔 깊은 우정이 생겨, 나로서는 든든할 따름이다. 뉴욕에서 이만큼 버틸 수 있었던 건 줄리의 역할이 지대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진정한 런던 토박이를 한 사람도 모르면 런던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8)고 했다는데, 나는 태생이 뉴요커인 줄리를 알았으니 이 애증의 뉴욕을 어느 정도는 안다고 떠들어도 되는 셈이다.

금요일 밤, 줄리가 선물한 잡지를 빠르게 넘기며 ‘런던 풍경(The Lodone Scene)’이라는 꼭지명부터 찾았다. 1931년 12월부터 1932년 12월까지, 울프가 격월로 연재한 산책 에세이9)를 읽기 위해서였다. 미국에서도 매달 『굿하우스키핑』을 구독해볼 수 있지만, 40년 전의 과월호가 필요했던 건 순전히 울프 때문이었다. 지나가듯 해본 말인데 용케도 그것을 찾아 빠짐없이 구해오다니. 주말에 줄리에게 근사한 점심을 사야겠다.


나는 울프의 소설만큼이나 그녀가 남긴 서평과 특히 에세이를 좋아한다. ‘어제는 아주 보람 있는 하루였다. 글 쓰고 산책하고 책을 읽었다.’10) 대학시절, 동기 하나가 학보에 인용한 울프의 일기 한 토막을 본 순간부터 나는 줄곧 미시시피를 떠나고 싶었는지 모른다. 런던에서의 그녀처럼 마음껏 읽고, 쓰고, 뉴욕 구석구석을 다리가 저리도록 걸어볼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마침내의 독립. 뉴욕에서의 나는 분명 지난 시대에 울프가 받았던 규제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뉴욕을 걷는 시간이 휴식처럼 느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결코 뉴욕이 런던만 못해서는 아닐 것이다. 과거 런던 시가지의 옥스퍼드 거리는 조금도 신사적이지 않지만, 울프는 그 같은 풍경 속에서도 아름다움이 탄생하고 있음을,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제 숙명인 냥 묘사했을 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유지니아, 아무래도 이건 사랑의 문제야. 뉴욕에서는 사랑을 해야 한다니까? 갑자기 줄리 목소리가 생각날 게 뭐람.

분명 이 도시도 익명의 예술가들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지만, 그것을 상쾌한 형태로 배출해내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하퍼스 매거진> 입사 초기에는 종종 그 소수의 얼굴과 마주 앉곤 했다. 그들의 정수리 위로 떨어지는 달무리 같은 조명은 내 발끝도 얼마간 비추었고, 그것만으로도 짜릿한 기분이 들던 때가 있었다. 그러고 집에 돌아오면 내 어깨를 둥그렇게 감싸는 보름달 꿈을 꾸곤 했다. 나는 너무 큰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인류가 달 표면을 밟으면 뭐하나. 오늘 밤도 내 머리 위에는 깜깜한 밤하늘뿐이다. 밤이 긴 계절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올 겨울엔 단편 하나도 완성하지 못했다. 늘 이런 식이니 그동안의 습작품을 고쳐서 내보라는 위로도 쓸모가 없다. 밑천이 없어도 너무 없네.


1970년 4월 20일

맨해튼 23번가. 첼시로 이사를 했다. 블록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붉은 벽돌의 아파트, ‘런던 테라스’11) 1930년에 지어진 대형 임대 아파트. 완공 당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아파트였으며, 같은 시기 뉴욕에 지어진 건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있다.

가 이제 나의 새 집이다. 지긋지긋한 퀸즈보로 브릿지도 이제 안녕이다!

취재 차 첼시 호텔이나 좀 들락거렸지,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첼시에서 사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하긴, 편집장님을 태우고 스타인벡12)의 장례식장까지 운전하게 될 줄은 (편집장님은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더 꼼꼼히 참석하는 편이어서 나는 한때 장례 리무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브 아놀드13)로부터 매그넘 그룹전 초대장을 건네받을 줄은 뭐 알았던가.

대충 짐을 정리하고선 허드슨 강가로 나와 산책을 했다. 곧 노을이 질 모양새여서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며 기다렸다. 서른의 여름, 문득 내가 아주 낯설게 느껴졌다. 흔히들 삶을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하는데, 어째 한 번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날들만 계속되는 것 같다.

뉴욕은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 범죄조직도 마약거래도 경찰의 손아귀를 벗어난 지 오래다. 경찰은 자신들이 무엇을 통제해야 하는지 아예 잃어버린 집단처럼 행동한다.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내려다 가방에 호신용 스프레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선 담배맛이 뚝 떨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첼시 피어스까지 꽤 걷고 말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이 더 불안했지만 태연한 척, 그러나 가능한 한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부둣가를 에워싼 벽마다 그래피티가 가득해서 현기증이 일었다.

전화로 줄리가 내 얘기를 듣더니 욕을 한바가지 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이 돼서 사실 별 것 아니었다는 듯 대꾸했다. 아무 일도 없었잖아. 그 말을 뱉으면서 늘 무슨 일이든 벌어지기만을 바랐던 지난날의 내가 우스웠다. 그동안 얼마나 안전한 울타리에서 그것을 외쳐왔던 건지.


1971년 8월 30일

뉴욕에 온지 무려 6년 만에 이직을 하게 됐다. 요즈음 이렇게 경쾌하게 첫 문장을 쓴 일기가 있었던가? 몹시 기쁘다. 

그동안에도 스카웃 제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처음 나를 알아봐준 <하퍼스 매거진>을 단숨에 떠나게 할 만큼 매력적인 곳은 드물었다. 물론, <미즈(Ms.)>14)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여성 해방 운동을 전면에 내세우는 잡지라니! 올해 말 창간을 앞둔 이 진보적인 잡지에 초기 멤버로 함께 할 수 있어 한 번 더 기쁘다.

글로리아 스타이넘15) 편집장이 여름휴가를 떠나기 전 보내온 편지를 거울 앞에 붙여 두었다. ‘적어도 무얼 하고 있는 동안엔 실패하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바로 다음에 붙어 있는 내 이름, ‘Ms. Eugenia.’ 이제 나는 더 이상 아가씨(Miss) 유지니아가 아니다. 그 호칭은 마치 언젠가는 부인(Mrs)이 될 것을 약속하는 것만 같아 찜찜했다. 남자는 죽을 때까지 미스터(Mr)로만 불리지만 우리 여자들은 너무 오랫동안 결혼의 유무로 호칭이 분리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미즈(Ms.)>와 함께 나를 바라보는 방법을 다시 배울 수 있을 거란 기대가 피어오른다.

사실 스타이넘 편집장는 3년 전 자신이 잡지 <뉴욕(New York)>을 창간을 도울 때에도 나를 내부 기자로 추천했지만 당시의 나는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었다. 나 하나만 책임지면 되는 생활에 얼마나 쉽게 지쳐버리는 사람인지를 아프게 깨달아가고 있을 때였으니까.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작가적 자아를 의식하고 지내는 스타이넘의 예민함이 염려될 만큼 날카로워 당황스럽기도 했다. 뉴욕에 와서, 내 이름을 불러주는 스타이넘과 같은 이들을 꽤 오랫동안 질투 아니면 동경하기 바빴음을 이제는 인정할 수 있다.

며칠 전, 처음 브롱스에 짐을 푼 날 쓴 일기를 발견했다.  ‘내가 알 수 있는 만큼은 다 알게 될 때까지 다가가야 할 세계가 아직 너무나도 많다.’ 새카맣게 잊고 있던 마음이 용케도 일기장에 남아 있었다. 무엇을 위해 뉴욕까지 와서도 거울 속 나와 맞장을 뜨고 있나 자주 의심스러웠는데, 이제 겨우 알겠다. 미시시피를 아쉬워하던 스물셋의 나도, 뉴욕을 무서워하는 서른하나의 나도 여전히 나 자신이 되어가는 중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아주 먼 미래에 미스 유지니아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될까. 오늘의 일기가 아득한 어느 날에 잘 발견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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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제37대 대통령(재임 1969~1974), 기반주는 뉴욕이다.

2) 리처드 닉슨(공)과 휴버트 험프리(민주당)의 TV토론은 진행된 적 없었다는 사실이 2003년에 확인되었다. 

3) 1850년 6월에 창간된 < Harper’s Magazine >. 미국의 권위 있는 월간잡지로 대표되고 있다.

4) 미국의 정치인이자 법조인으로, 35대 대통령을 지낸 존 F. 케네디의 동생이다.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 가담해 진보층의 지지를 얻자 1968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차기 유력 주자로 평가받았지만, 경선 도중 요르단계 청년에게 암살당했다. 

5) 미국의 비폭력 흑인 인권 운동가이자 개신교 침례회목사. 1964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으며 1968년에 멤피스에서 암살당하였다. 이후 1986년, 미국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매년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Martin Luther King, Jr. Day’라는 연방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6) 미 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 계획’에 의해 발사된 두 번째 유인우주선으로, 1968년 12월 21일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되어 같은 해 12월 27일에 지구로 돌아왔다. 최초로 지구 바깥의 천체를 관측한 유인우주선이다.

7)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널리 읽히는 여성 월간지 < The Good Housekeeping >. 1885년 창간 이래 꾸준히 여성의 관심사에 대한 좋은 기사를 써온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8) 버지니아 울프, 『런던을 걷는 게 좋아』, 정은문고, 88p

9) 버지니아 울프, 『런던을 걷는 게 좋아』, 정은문고, 110p

10) 버지니아 울프가 남긴 1934년 8월 30일 일기에서. 출처: 버지니아 울프, 『런던을 걷는 게 좋아』, 정은문고, 102p

11) 1930년에 지어진 대형 임대 아파트. 완공 당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아파트였으며, 같은 시기 뉴욕에 지어진 건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있다.

12)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존 스타인벡. 30년대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며 사회의식이 강렬한 작품과 온화한 휴머니즘이 넘치는 작품을 썼다. 주요 저서로 《분노의 포도》,《에덴의 동쪽》 등이 있으며 노벨 문학상,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13) 러시아 혈통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여성 사진가로서는 최초로 현대 사진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집단 <매그넘(Magum)>의 회원이 되었다. 1950년대 남성 사진가들 틈에서 헐리우드를 비롯해 전 세계를 누비며 보도사진의 한 분야를 차지했다.

14) 미국 도시에 관한 잡지로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 <뉴욕(New York)> 매거진에서 1971년 12월에 창간한 여성 해방 운동 잡지이다. 이후 <미즈(Ms.)>는 곧 미국에서 여성 관련 이슈와 사회적 발언을 하는 획기적인 잡지로 부상하게 된다.

15) 미국 여성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 1960-70년대에 페미니스트 저널리스트와 사회운동가로 왕성히 활동하였다. 일찍이 ‘미즈(Ms.)’라는 호칭을 고안해내 ‘Ms. 사용운동’을 벌인 실라 마이클스(Sheila Michaels)와 뜻을 같이 하면서 호칭의 대중적인 사용을 위해 동명의 잡지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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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인터뷰어이자 14년차 일기인간.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어떤책, 2020)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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