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일기장

영화 속 그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조와 에이미의 일기, 플럼필드에서 엄마와 고모의 대화

<작은 아씨들>

윤혜은 / 2020-05-21


영화가 끝난 후 영화 속 인물들이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혹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한 적 없으셨나요. <우리들>의 선이와 지아는 화해한 뒤 예전처럼 친한 친구 사이로 돌아갔을까요? <캐롤>의 테레즈와 캐롤은 한집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겠지요? 그들은 자신의 삶을 어떤 색깔로 채워가고 있을까요. 퍼줌이 상상력을 발휘해 쓴 그들의 뒷이야기, ‘그들의 일기’를 보여드립니다.


조의 일기

186*년 *월 *일

메그 언니는 정말로 자신이 결혼을 ‘선택’했다고 믿는 걸까? 솔직히 난 언니를 생각하면 “결혼하든가, 죽이든가” 따위의 헛소리로 내 주인공의 운명을 가르치려 든 편집장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존을 향한 언니의 사랑은 물론 진실하지만, 결혼을 결정하기까지는 결혼하지 않은 삶을 향한 막연함 두려움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백퍼센트 사랑만으로 결혼하는 여자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어렸을 땐, 우리 여성들의 삶을 망치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던 것 같다. 사랑은 잘못이 없다. 다만 우리를 망치는 건 두려움이다. 줄곧 익숙한 길만 걷도록 길들여진 여성들에겐 사방이 온통 두려움 투성이니까. 우리에게도 학위를 수여하고, 우리에게 더 많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갖게 하고, 비혼을 손가락질 하지 말고, 출산을 강요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우리를 둘러싼 온갖 두려움이 걷힌다면 여자들은 애써 결혼하지 않고도 자신들의 사랑을 손쉽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는 언제나처럼 여성들을 안전한 길로 인도하기 바쁘다. 그러한 삶이 정말로 안락한지는 미지수다. 선택의 여지없이 천편일률적으로 학습되는 여자의 일생. 쉼 없는 육체적, 감정적 노동에 이내 무뎌진다. 고통은 왜 바라보는 이의 몫인가. 사회가 여성들에게 주입하는 아편이 내게 듣지 않은 것은 축복일까, 아님 불행일까. 

문득 외로워지는 밤이면 허구의 얼굴들로 도망간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여기에 숨어 있다. 습관처럼 펼친 습작노트엔 오래 전 언니가 했던 말이 쓰여 있다. ‘작은 일로 열등감에 빠지는 기분을 잘 알아.’ 언니는 이 말을 잊었기 때문에 존과 결혼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와 무엇을 바꿀 수 있겠는가? 그저 언니가 많은 일로 열등감에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186*년 *월 *일

엄마가 편지를 보내셨다. 베스가 내 낡은 옷장 깊숙한 곳에, 언제 썼는지도 모를 편지를 넣어둔 모양이었다. 얌전히 가면 안 된다고, 땀에 흠뻑 젖은 베스를 다그치던 밤을 사과하고 싶다. 

‘언니가 이 편지를 발견했을 때, 이미 난 하느님 곁에 가 있겠지. 언니가 오랜만에 나를 떠올리며 너무 슬퍼하지 않길 바라. (언니라면 분명 방금 “아냐 베스, 난 늘 네 생각을 한다고!”라고 말했겠지? 하지만 난 진심으로 언니가 나를 내내 생각하지 않길 바라.)

난 정말 괜찮아. 언니들과 난 다르잖아.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웃기지만 말야. 언니들, 그리고 에이미까지. 모두 남다르게 반짝인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런 나라도 하나쯤은 남들과 다른 뭔가가 있겠지 싶었는데, 바로 이런 순간을 두고 한 말이었을까?

아무런 계획도 없고 별 볼일 없는 나를 사랑해줘서 정말 고마워. 가족 모두에게 받은 사랑은 하느님께 전부 말씀드릴 거야. 그 분은 이미 다 알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직접 이야기해드리고 싶어. 어쩌면 우리들이 얼마나 서로를 아꼈는지 궁금해서 나를 부르시려는 건지도 모르니 말이야. 천국에서 나는 더는 심심하지 않을 거야.

왜 모두 떠나려고만 하는 걸까? 언닌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좋았어. 하지만 엄마, 한나와만 보내는 오후는 너무 길었지. 두 분은 내 연주가 지겨웠던 날도 있었을 거야. 건강해지면 언젠가 언니를 위해서 곡을 쓰고 싶었는데… 하늘에서 마저 약속을 지킬게.

아무리 나라도  혼자 남겨지는 건 싫어. 그래서 내가 먼저 가는 거야. 겁나지 않아. 이제야 나도 언니처럼 용감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언니가 보고 싶을 거야. 천국에서도.’1)


1895년 *월 *일

‘베르트 모리조’라는, 프랑스 화가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에이미는 편지에서 그녀가 여자라는 이유로 사망진단서에 ‘무직’이라 적혀 있었다며2) 분노했다. 그리고 모리조가 생전에 얼마나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는지 일러주었다. 딸을 낳았던 해를 제외하고는 여러 전시에서 그녀의 이름이 빠지는 법이 없었단다. 화가를 꿈꾸는 프랑스의 소녀들에게 모리조는 얼마나 귀한 존재였을지 생각해본다. 아무리 배를 몰아도 아침은 돌아오지 않고, 깜깜한 밤을 항해하는 나날. 멀리서 우두커니 빛나는 등대 같았으리라.

얼굴도 모르는 여성의 사망으로 여는 오후가 지나치게 우려진 찻잎처럼 씁쓸하다. 이런 날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반복되려는 걸까? 프랑스까지 들먹일 필요 없이, 당장 우리 주변에만 해도 내가 모르는 수많은 여성들의 삶이 납작하게 축소되고 있다. 연필이 부러질 정도로 펜을 쥐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다. 잉크병이 아무리 빠르게 바닥을 드러내어도 매일 조금씩 투명해지는 기분이다. 잉크가 묻은 손가락을 가재수건에 닦아 낸다. 마디마다 검푸른 잉크가 반점처럼 남아 있는데, 정작 수건에는 별로 묻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비치는 내 모습도 꼭 이만큼일 것이다. 작은 얼룩을 발견한 정도의 눈에 띔. 아니, 성가심에 가까우려나….

하지만 먼, 아주 아주 아주 먼 미래에 에이미가 천국으로 베스를 만나러 가게 되는 그날엔, 많은 사람들이 에미이의 부고를 듣고 슬퍼하길 바란다. 물론 에이미의 사망진단서에는 화가라는 직업이 어쩌면 그녀의 이름보다도 더 선명하게 적혀 있어야 할 테다.

에이미의 첫 전시에 가지 못했던 몇 해 전 만큼이나 속상한 하루다. 언젠가 에이미, 로리와 함께 파리로 모르조의 그림을 보러 갈 수 있다면 좋겠다.


1929년 12월 *일

며칠 전, 런던에 다녀온 제자로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선물 받았다. 작년 가을, 그녀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펼친 ‘여성과 소설’ 강연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터였다. 역사적인 하루를 책으로 확장시킨 울프 작가에게 감사 인사를 보내고 싶다.

당장 떠오르는 문장은 이런 것.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재치를 번뜩일 필요도 없지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할 필요도 없고요.’ 어쩐지 나는 이 대목에서 눈물이 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타국의 젊은 여성 작가에게서 엄마의 향수를 느꼈던 것 같다.

영국 여성에게 투표권이 생긴 지도 곧 10년째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죽기 전에 여성 참정권의 시대가 열렸음에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물론 아직도 부족하다. 아슬아슬한 재산권과 투표권을 손에 쥐고 제도권 안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여성들은 오히려 더 큰 위험에 노출돼 있는 듯하다. 다음 세대를 위한 변화는 이제 막 물꼬를 튼 셈이니까. 젠틀한 척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남자들의 반감과 비아냥에 더 자주 맞서야 할 테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확대될수록 차별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폭력적인 방향으로 번져갈 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인생을 거칠게 압축해본다면 줄곧 초조했고 조급했다고 할 수 있겠다. 스스로 생각해도 고독하고 필사적으로 살아왔다. 후회는 없다. 다만, 다음 세대의 여성들은 이 같은 노력 없이도 더 나은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자기 자신이 되는 데에 설득이나 쟁취가 필요한 대신, 끝없는 이해와 박수를 받기를. 울프의 바람처럼 연간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 혹은 그 이상의 기회를 거리낌 없이 누리게 되기를 말이다.


에이미의 일기

186*년 *월 *일

떨쳐지지 않는 나의 ‘조 콤플렉스’를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은 언니를 생각하면 코르셋을 벗고 있어도 가슴이 답답하다. 나는 진실로 언니를 사랑하고, 심지어 존경하기까지 하지만 솔직히 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누구도 누구의 생각을 알 수 없지. 그래서 내가 일생을 오직 나에 대해서만 궁금해 했나 보다.

어른이 되면 진짜 원하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그것을 따라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빨리 자라고 싶었다. 내가 메그나 조만큼 컸을 때, 무언가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조바심은 조도 마찬가지였겠지. 어떤 사람들은 언니를 향해 이기적이라고 수근 거리는데, 조가 얼마나 이타적인지 사람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하지만 꼭 엄마처럼 깊고 넓은 눈, 마치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한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내 모든 것이 조에게 쉽게 읽히는 것만 같아 나는 자주 그녀의 뜻을 엇나갔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어린 내가 도망치고 싶었던 건 콩코드가 아닌, 조였을까?

어젯밤 꿈에는 조가 오랫동안 내 눈을 맞춰왔고, 나는 언니가 하지 않은 소리를 들은 것만 같다. “에이미,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니?”

눈을 뜨니 새하얗게 벗은 로리가 내 머리칼 끝을 조금 쥔 채 잠들어 있었다.


186*년 *월 *일

오랜만에 본 조는 머리가 짧아져 있었다. 챙이 짧은 감색 체크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이번에는 순전히 자신을 위한 결정이었다며 모두의 염려를 잠재우기 바빴다. 그러고는 엄마에게 달려가는, 그 홀가분한 뒤통수가 예뻐서 뉴욕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언니의 얼굴을 그려주겠노라 약속했다. 실은 어렸을 때에도 짧은 머리가 조에게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오래 전, 베스 언니와 속삭이며 조의 용기를 감탄했던 그 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또 그 무렵부터 조가 가족에게 쳐놓은 울타리는 얼마나 견고한지.

언젠가 언니는 로리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고 말했다. 내 등을 쓸어내리는 조의 손길에 안심하면서도 못난 나는 그 말을 아주 믿진 않았는데, 조의 마음을 나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187*년 *월 *일

오늘은 조가 보낸 편지의 일부로 일기를 대신한다.

‘로리는 너와 결혼하면서 일도 사랑도 모두 쟁취했지. 나는 로리에게 향하는 박수가 너에게도 가닿아야 한다고 생각해. 너도 그 두 가지를 충분히 양립하고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어. 내가 언제나 네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한다는 걸 잊지 말아줬으면 해.’3)


플럼필드에서의 점심, 엄마와 고모의 대화

아이들 고모의 초대를 받아 플럼필드에 다녀왔다. 지나치게 널찍하고 거대하여 썰렁하기까지 한 응접실에서 점심을 먹었다. 근사한 테이블에 어울리지 않게 고모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그 애는 앞으로 정말 혼자 살 작정이라니?”

부러 조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고모가 귀여웠다. 사실 조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결혼하고 말고가 고모에게 어떤 작은 영향이라도 미칠 수 있단 말인가. 퉁명스럽기는 해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를 걱정하는 고모의 마음이 고마웠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녀는 분명 누구보다 외로움에 강한 사람이었지만, 외로움에 강하다는 건 그만큼 외로움을 잘 안다는 것 아닐까 생각한 적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고모에게 조금 더 살갑게 굴어주었으면 했는데…. 당신을 가장 많이 닮은 조가 꼭 자신처럼 완강한 결정을 내린 게 고모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을까. 나는 그녀를 이제 그만 안심시켜주고 싶었다. 

“조에게 독신 여자로 살려면 부자가 돼야 한다고 하셨다면서요? 하지만 조는 돈이 없어도, 설령 세상이 그 애에게 모욕과 야유를 던진다 해도 신나게 즐기면서 살 아이예요. 물론 제가 그걸 바란다는 건 아니고요.”


아차차. 왜 누구 앞에서든 조에 대해 변호할 때면 매번 감정이 조금 격해지는지. 안심은커녕 고모에게 한소리를 듣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잠시 후 돌아온 고모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래. 자네 말처럼 조의 인생엔 앞으로 고난이 많을 거야. 하지만 그 덕분에 글을 잘 쓸 수 있게 될는지도 모르지. 이왕이면… 그 애가 즐거운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구나.”

내가 조금 웃자 고모는 새침하게 덧붙였다. “혹시라도 조에게 이 말을 전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아직도 조금은 괘씸하니까.”

훗날 조가 제 처지를 비관하려 할 때, 나는 조가 즐거운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다던 고모의 말을 떠올렸다. 약속을 깰 수는 없으므로, 대신 이렇게 말해주었다. “어떤 천성을 억누르기엔 너무 고결하고 굽히기엔 너무 드높단다.”

자신을 향한 비난은 생각보다 쉽게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자비 없는 세상에서 여성으로서 스스로를 긍정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둘을 자주 착각하는 것 같다. 하물며 여성의 경우 더 쉽게 자신을 의심하는 길로 빠진다. 나는 조가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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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작은 아씨들> 1994년 作에서 베스가 운명을 달리 하기 전, 조에게 남긴 말 중 일부를 인용.

2) 2016년 4월 5일 <오마이뉴스> 기사, ‘제비꽃 향기로 남은 최초의 여성 인상주의 화가’에서 발췌.

3) 루이자 메이 올콧은 실제로 여동생 메이가 유럽에서 화가로 경력을 쌓았던 상황과 연하의 스위스 음악가이자 사업가와 결혼한 사실을 소재 삼아 소설 《다이애나와 퍼시스》를 썼다. 그리고 책에서 사랑과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혀두었다. “나는 여성이 그 두 가지를 양립할 힘과 용기만 있다면 사랑과 일을 모두 성취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다. 남자가 그 두 가지를 양립하고 모두 성취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는데, 왜 여성의 삶은 남성만큼 충만하고 자유롭지 못한가?” (루이자 메이 올콧, 《작은 아씨들》(펭귄클래식, 2011) 서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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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ZOOMER

프리랜서 인터뷰어이자 14년차 일기인간.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어떤책, 2020)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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