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함께프로젝트] ➀ 까만점, 이야기의 시작

(※기사 내용 중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촬영 현장의 배우들(왼쪽부터 강인정, 신기환, 임유빈 배우) ©이영음

-미디어에서는 피해자를 대개 구석에 웅크린 채 숨어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거나 그들의 고통을 담아내는 데만 집중하곤 하는데요. 반면, <까만점>은 피해자의 현실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배우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나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면요? 
인정: 사람이 힘들고 슬픈 일을 겪었다고 해서 배가 안 고픈 게 아니고, 웃을 일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같이 떡볶이를 나눠 먹는다든지 ‘몰카’나 ‘성범죄’를 검색하면서도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이 영화가 갖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피해자들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좋았어요. 

기환: 저희 세 명이 함께했던 장면들이 모두 좋았어요. 대부분의 매체에서 피해자를 그릴 땐 항상 혼자인데, 저희는 세 명이 늘 같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장면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유빈: 다인이가 화장실 갔을 때 지안이가 “다인이는 모르는 게 나았으려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말에 하경이가 “모르고 행복하느니 알고 불행한 게 나아”라고 대답하거든요. 근데 우리가 과연 불행했나 싶어요. 어떻게 보면, 그 질문 자체가 답이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영음: 영화 속에서 세 친구가 진지한 얘기를 하다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우울하고 절망적인 대사를 하는데, 그런 대사들이 (현실을) 잘 담아내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하경’의 모티브가 된) 실제 하경이라는 친구가 영화가 공개된 후 본인 SNS에 글을 올렸어요. ‘영화 속 캐릭터와 내 이름이 같아서 혹시나 내가 비슷한 사건을 겪은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고민하다 글을 올린다. 결론은 나는 내가 피해자인지 아닌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영화 속의 하경과 지안, 다인이는 피해 사실을 확인하였기에 피해자가 된 것이고, 나는 내가 여태 확인한 바는 없다. 하지만 내가 피해를 겪지 않았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가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요. 저는 그 글이 영화를 대변한다고 생각해요. 

<까만점> 스틸컷

-영화에 대한 인상 깊었던 반응이 있었나요? 
기환: 부모님이랑 같이 봤는데 놀랐던 기억이 나요. 두 분 다 ‘이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야?’라며 남자 친구들이 나올 때마다 욕 한 마디씩 하시더라고요. 근데 딱 거기까지였고 ‘연대’까지는 생각 못 하시는 것 같았어요. 신기하고 충격적이었죠. 확실히 본인의 경험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는구나 싶었고,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더 변할 필요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영음: 어른들은 디지털 문화를 모르시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온라인 채팅이 익숙한 저희에겐 생소한 이야기가 아닌데 저희보다 네다섯 살 위만 하더라도 학창 시절에 그런 문화를 겪지 않아서인지 나이대가 올라갈수록 단순히 ‘사건’에만 집중하더라고요. 오히려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연대에 대한 의미를 크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영화를 이해해주니까 좋으면서도 어린 나이일수록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게 씁쓸했죠.

인정: 제가 속해있는 배우들 단톡방이 있어요. 근데 거기서 한 남자 배우가 ‘(영화의) 색이 너무 짙은 것 같아 거부감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충격적이었어요. 이런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왜 굳이 나한테 할까 싶기도 했고요. 보고 나면 분명히 달라질 게 많을 텐데 말이에요.

유빈: 사실 우리 영화는 우정 영화이기도 하거든요. 세 캐릭터가 모두 뚜렷하고, 그들이 함께 보낸 시간과 그 안에서 나눈 감정들이 영화 안에 잘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그걸 느끼고 받아들여준 분들도 있고요. 

영음: 지금은 과도기라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게 일단 중요한 것 같아요. 색이 짙다는 말이 나올지언정 이런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볼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 아닐까 싶어요. 

촬영 현장에서의 신기환 배우 ©이영음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지안의 죽음이 등장하죠.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영화에서만큼은 아무도 죽지 않기를 바랐기에 슬픈 마음이 컸는데요. 지안은 꼭 죽어야만 했을까요? 
인정: 저희도 그 질문을 많이 했어요. PD님과 감독님한테 지안이를 죽이지 말아달라고도 했는데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답을 들었죠. 

영음: 지안이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추측하지 않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모든 자살은 충동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지안이의 죽음에 명확한 이유를 덧붙여서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기환: 지안이는 이 사건 때문에 죽은 게 아니고, 이 일이 없었더라도 언젠가는 자살 충동을 느낄 친구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생각이 많은 친구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어요. 

-생각이 많기 때문에 충동을 잘 느끼는 인물이라고 설정을 하신 건가요?
영음: 생각을 하다 보면 존재에 대한 질문까지 하게 되잖아요. 존재에 대한 의문은 생각 많은 사람들과 떼어놓을 수 없는 질문인 것 같아요.

인정: 제 동생이 친구들하고 영화를 같이 봤는데 ‘영화니까 제발 죽지 말아라’ 그러면서 봤대요. 

다인: 지안이가 왜 죽었는지 저는 가늠할 수가 없었어요. 

인정: 지안이의 우울이나 심연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경이는 (자살의 이유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경이도 (우울을) 겪고 있었고, 상담을 받고 약을 먹으면서 이겨내 보고자 했을 뿐이죠. 

기환: 지안의 죽음이 남겨진 사람들에겐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지안이에겐 <델마와 루이스> 같은 엔딩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영음: 저는 오히려 이 영화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는 게 비록 내용 자체는 절망적일지라도 남은 사람들은 절망에 잠식되지 않고 살아간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어요.  

촬영 현장에서의 배우들(왼쪽부터 강인정, 신기환, 임유빈 배우) ©이영음

-<까만점>은 누구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인가요? 
기환: (남녀노소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여성영화’이기 전에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유빈: 가족들과 함께 보고 싶어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 궁금해요.

영음: 저는 어린 친구들이 자라서 영화를 봤을 때 이해를 못 했으면 좋겠어요. 

유빈: <까만점>은 N차 관람일수록 더 많은 게 보이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봤던 분들이 또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보면 볼수록 재미있고 볼 때마다 눈물 나는 포인트나 이입되는 캐릭터가 달라지거든요.

<까만점> 배우 및 감독 (왼쪽부터 강인정, 신기환, 임유빈 배우와 이영음 감독) ©퍼플레이

-마지막으로 관객 분들 또는 2030 여성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영음: 영화 러닝타임은 50분이지만 체감 30분이니 부담 없이 봐주세요! 

인정: 많이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이 봐주세요. 2030 여성분들, 우리는 한 팀입니다! 

유빈: 세상 모든 다인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기환: 저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성향이 있어서 ‘함께’라는 것을 동경하는데, 이 영화가 ‘함께’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영화인 것 같아요. 점이 모여서 면이 된다는 게 연대 그 자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함께 프로젝트’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