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퍼플레이가 만난 사람들
[함께프로젝트] ➀까만점, 이야기의 시작
<까만점> 감독&배우 인터뷰
퍼플레이 / 2021-11-04
#세상을_바꾸는_여자들 2021.10.21.|<까만점> 감독 이영음, 배우 강인정, 신기환, 임유빈을 만나다 ▶ GO 퍼플레이 |
<까만점> 출연진 (왼쪽부터 강인정, 신기환, 임유빈 배우) ©이영음
세 명의 여성이 있다. 이름은 하경, 지안, 다인. 그들은 대학의 같은 과 동기이자 선후배 사이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하경은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된다. 남자 동기들이 단체 채팅방에 여자친구들의 ‘사진’을 올리고 있다는 것. 확인해보니, 그 안에는 자신을 포함해 지안과 다인의 사진도 있었다. 분노에 찬 하경은 그다음 날 바로 지안과 다인을 만난다. 그리고 말한다.
일. 니네 남친들이 니네 사진 찍어서 단톡에 올렸어. 난 원나잇 한 애가.
이. 지들끼리 보고 바로 지웠대서 증거는 못 가져왔어.
삼. 난 무조건 고소할 거야. 니네 어떻게 할래?
다인보다 상황을 먼저 파악한 지안은 바로 ‘정보원’을 묻고, 다인은 어딘가 천진한 질문을 한다. “사진 올린 게 왜요?” 그리고 돌아오는 하경의 답. “글쎄. 옷을 벗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된 세 친구들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머리를 맞댄다. 그런데 의견은 하나로 좁혀지지 않고, 문제를 대하는 태도도 어딘지 미묘하게 어긋난다.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지 못해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함께 있어 즐거운 셋.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다룬 영화 <까만점>(이영음, 2021)은 피해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세 인물은 심각한 얘기를 나누다가도 식사를 주문하거나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을 공유한다. 그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소위 ‘피해자다움’이란 것이 얼마나 허상에 불과한지 실감하게 된다. 피해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고, 그 안에는 분노와 행복, 슬픔과 기쁨, 좌절과 희망이 공존한다.
이영음 감독은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감각적이고 독특한 연출로 풀어내 극의 균형을 적절하게 맞췄다. 광고와 뮤직비디오 작업을 주로 해왔지만 애초 영화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n번방’과 같은 성폭력/성착취 사건을 보며 이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완성된 <까만점>은 퍼플레이에서 최초 공개되어 ‘함께 프로젝트’라는 캠페인으로 함께하고 있다. 영화에 대한 보다 깊은 얘기를 나누기 위해 10월의 끝자락에 감독과 배우들을 만났다. 서로를 향한 애정 어린 눈길과 몸짓이 특히 기억에 남았던 그날의 대화를 전한다.
*함께 프로젝트는 여성기업이자 사회적기업인 퍼플레이가 따뜻함을 나누고 이슈를 환기시키기 위해 영화의 판매 수익금 일부를 여성인권단체에 기부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올해 진행하는 함께 프로젝트 2탄은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다룬 작품 〈까만점〉의 판매 수익금 50%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 후원합니다. |
<까만점> 배우 및 감독 (왼쪽부터 강인정, 신기환, 임유빈 배우와 이영음 감독) ©퍼플레이
-안녕하세요. 감독님, 배우님 소개 먼저 부탁드릴게요.
이영음(이하 영음): <까만점>을 연출한 이영음입니다. 퍼플레이가 여성영화, 다양성영화를 중심으로 하는 플랫폼이라 제가 염두에 둔 관객 타겟층과 가장 부합하는 사이트라고 생각했는데, 온라인 개봉을 함께하게 되어 영광스러운 마음입니다.
임유빈(이하 유빈): <까만점>의 다인 역을 맡은 임유빈입니다. 감독님 덕분에 좋은 작품으로 함께하고 퍼플레이를 통해 보여질 수 있어 영광입니다.
신기환(이하 기환): <까만점>에서 지안 역을 맡은 신기환입니다. 저희 영화를 관심 갖고 애정 어린 눈으로 봐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나게 돼 기쁜 마음입니다. 서로 더 흥했으면 좋겠습니다!
강인정(이하 인정): <까만점>에서 하경 역을 맡은 강인정입니다. 퍼플레이, <까만점> 파이팅!(웃음)
촬영 현장에서 이영음 감독(오른쪽)과 신기환 배우 ©이영음
-감독님은 광고, 뮤직비디오 작업을 주업으로 삼고 계세요. <까만점>이 첫 영화 연출작인데, 이 작품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영음: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은 항상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대학도 영상학과를 나왔고요. 광고, 뮤직비디오를 하게 된 것도 헤드로서 현장 경험을 많이 익히고 싶어서였어요. 경험을 쌓은 뒤 영화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와중에 n번방 사건 등 여러 성폭력 문제가 터지는 걸 보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오랜만에 생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요. 구상은 영화 찍기 1년 전부터 계속했고, 그때도 기환 배우님이랑은 영화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배우님은 당시 어떤 피드백을 주셨나요?
기환: 그때의 시나리오는 지금과는 달리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럼 장르가 달라진 건가요?
영음: 당시에는 성폭력 사건을 겪은 여성이 성적 대상화, 외모 콤플렉스, 타인의 시선 등으로 힘들어하다가 어떤 사건으로 죽어가는 와중에 뱃살이 바지 위로 튀어나와 보이는 게 거슬려서 힘을 주며 죽어가는 엔딩으로 끝을 맺었어요. 기괴한 연출로 풀어내려고 했죠. 그런데 ‘과연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가 이게 맞나?’라는 의문이 들었고, 결국 제가 원하는 건 ‘공감이 되고 힘을 줄 수 있는 영화’라는 결론을 냈어요. 그 결과 주인공 옆에 친구들도 생겨나게 됐고요.
촬영 현장에서 강인정 배우 ©이영음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배우님들의 감상은 어떠셨어요?
유빈: 처음에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영화적인 이야기로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다인이와 닮은 점이기도 하고, 무지했던 점이기도 하죠. 나와 가까운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게 전혀 와 닿지 않았거든요. (그 생각은 언제 바뀌게 됐나요?) 대본 리딩을 하면서 언니들과 얘기를 나누며 많은 걸 배웠어요. 그러면서 이게 실제로도 많이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죠.
영음: 처음 미팅 때 (유빈 배우가)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는데 그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n번방 이슈에 대해 남자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가 너무 화가 나서 울었다는 거예요. 그게 다인이처럼 느껴졌어요.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다고는 하지만 (각성이 안 됐을 뿐) 사실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거죠.
기환: 저는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엔딩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까만 점을 마음에 새기잖아요. 그게 너무 와 닿았고 그때 비로소 우리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연대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인정: 저는 시나리오 다 읽고 나서 ‘이런 작품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에서 이 인물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하겠다 싶었죠.
<까만점> 촬영 현장의 강인정(왼쪽) 배우와 임유빈 배우 ©이영음
-‘디지털 성범죄’라는 소재를 영화로 풀어낼 때 고민되는 지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사전에 자료 조사나 전문가 인터뷰 등 중요하게 생각한 작업이 있나요?
영음: 인터뷰가 필요 없었던 게 제 주변 친구들이 이미 너무 많이 겪고 있는 일이었어요. 정도만 다를 뿐 비슷한 맥락의 경험을 갖고 있었죠. 어떤 식으로든 대상화된 시선으로 타인에게 비춰지는 경험을 한 번은 하게 되잖아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다만 ‘얼마나 찍혔는가’ ‘얼만큼 노출됐는가’ 등의 수위가 범죄의 심각성을 결정짓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영화에서도 사진을 노출하지 않고 말로만 표현하려고 했어요.
-영화의 인트로는 감독의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는 인장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까만점>의 오프닝 시퀀스는 음향이 강렬하고, 광고 문법에 익숙한 연출 같다는 느낌도 받았는데요. 이런 구성은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궁금해요.
영음: 일단 오프닝 타이틀은 점이 면이 되는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면과 점에 구분을 두고 싶지 않았고, 임팩트 있게 그려내고 싶었죠. 그리고 경수로 인해 하경이 몰입하고 있던 세계가 깨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걸 잘 담아내고자 했어요.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 연출 방식을 택한 건, 캐릭터들 자체가 현실적이기 때문에 연출로써 그 무게를 맞추려고 했죠.
-영화 안에서 화면비율 변화가 많은 편인데, 그것도 비슷한 이유로 택한 방식인 건가요?
영음: 주인공들이 겪는 상황이 결코 가볍지 않고 또 힘들지 않은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여자 친구들(피해자)은 좁은 화면에 담고, 남자 친구들(가해자)은 넓은 화면에 담아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피해자를 표현하는 방식 중의 하나였죠. 반대로 엔딩에서는 화면이 천천히 옆으로 열리면서 끝나요. 그들이 더 이상 갇혀있지 않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까만점> 스틸컷
-세 캐릭터의 색깔이 굉장히 뚜렷하고 입체적이에요. 각자 맡은 인물을 처음 마주했을 때 배우님들 소감은 어떠셨나요.
인정: 세 명의 캐릭터 모두 제가 갖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하경의 모티브가 된 분을 실제로 만나 뵀을 때 ‘내가 이 분을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멋진 분이었어요. 실제 인물과 내가 표현해야 할 캐릭터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죠. 사실 세 인물 중 가장 마음이 쓰인 건 지안이라 나도 모르게 지안이로 향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또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이 다른 아이들이 아닌 거예요. 하경이 안에도 지안이 같은 부분이 있죠. 그럼에도 더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건 본인이 지안이의 울타리가 되어줘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경이는 지안이의 성격과 속내를 잘 알고, 같이 다운되면 더 심한 우울 속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더 단단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후반에는 다인이 덕분에 ‘내가 꼭 울타리가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풀어진 것 같아요.
기환: 저는 캐릭터와 친해지는 과정 속에서 초중반까지는 혼란스러웠어요. 지안이가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친구이다 보니 어느 정도로 표현해야 할지 어렵더라고요. 제가 실제로도 생각이 많아서 캐릭터에 다가가다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있는데, 감독님이 그걸 알고 ‘기환아 너는 그냥 대충해!’라고 해주셨어요. 그게 저에겐 큰 위안과 힘이 됐죠.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온전히 이해받는 느낌이라 그 말을 들은 후부터는 편하게 다가갔어요. 그러다 보니 저와 가장 비슷한 결의 캐릭터가 나온 것 같고요.
-지안이처럼 평소에 생각이 많으신가 봐요.
인정: 거의 (지안이) 그 자체예요. 생각 많은 걸로 치면 똑같아요.
기환: 그렇답니다! (웃음)
유빈: 저는 다인이라는 캐릭터를 처음 봤을 때 성격적으로는 저와 다른 부분이 있다고 느꼈는데 연기를 계속 하다 보니 나랑 닮은 구석이 있고, 감독님도 어떤 틀을 주시지 않아서 다인이와 저를 동일시하며 연기했던 것 같아요. 뒤로 갈수록 다인이가 변하는데 제가 많이 반영됐다고 생각해요.
영음: 제가 캐릭터를 만들긴 했지만 이게 저만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에 배우들과 같이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캐릭터를 잡은 건 저지만 입체성을 부여한 건 배우들 역할이 컸죠.
-그럼 본인의 캐릭터가 지닌 장단점은 각각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인정: 하경의 장점은 묵묵하고 담담하고 의지가 될 만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단점은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다는 것. 근데 이것도 단점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게 방어기제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니컬하게 세상을 바라보려는 건데, 원래는 그런 애가 아니거든요. 근데 그것도 고쳐 나가잖아요. 마지막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사과하는 용기 있고 멋있는 아이죠.
기환: 지안이는 생각이 많은 게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근데 지안이 같은 친구가 옆에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눈치를 많이 보면서 배려해주는 스타일이거든요.
인정: 지안이 단점은 혼자 짊어지고 공유를 잘 안 한다는 거예요. 생각 정리가 다 끝나고 난 뒤에 얘기를 하죠. 반면에 하경이는 모든 걸 공유해주길 바라거든요. 그래서 하경이가 지안이를 더 많이 좋아하고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었던 게 있는 것 같아요.
기환: 그리고 지안이는 용기를 내는 데 더디다는 게 단점인 것 같아요. 검열을 많이 해요. 신중한 것이기도 하고. 장단점이죠(웃음).
유빈: 다인이의 장점은 모든 걸 흡수할 준비가 돼있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가장 많이 성장하고 발전한 캐릭터라고 생각하거든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좋은 점들을 흡수하면서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단점이라고 할 만한 부분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인정: 이게 다인이에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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