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퍼플레이가 만난 사람들

서로의 길을 넘나들며

<무경계> 여인서 감독

퍼플레이 / 2024-04-05


#세상을_바꾸는_여자들
2024.3.28.|여인서 감독을 만나다


비당사자가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여인서 감독은 다큐멘터리 <무경계>를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간다. 감독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동생 ‘인찬’과 장애인 인권 운동가인 엄마 ‘남실’을 기록하고, 비당사자로서 운동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자신이 직접 비당사자로서 운동에 나서며 그 질문에 더욱 가깝게 다가간다. 

‘무경계’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운동을 하는 데 있어 당사자와 비당사자의 경계는 종종 모호해진다. 결국에는 그 경계를 의식하지 않고 손을 잡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아닐까. “우리는 자주 서로의 길을 넘나든다. 길 건너편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길 위에서 어색한 눈인사를 나누고 얼싸안고 울기도 한다. 그러다 헤어질 시간이 되면 우리는 다시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하는 세상을 꿈꾸며.” 감독의 염원이 실현되기를 바라며 그와 나눈 대화를 전한다. 

<무경계> 스틸컷

-이 작품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이준석이 힘을 얻으면서 지하철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농성하는 분들에게 “시민을 볼모로 삼지 말라”는 말을 할 때였어요. 이걸 빨리 기록해야겠다는 조급함에 현장에 갔는데 거기서도 ‘내가 여기 있어도 될까’ ‘비장애인인 내가 이렇게 목소리를 크게 내도 되는 걸까’ 고민하게 됐습니다. 주변에 비슷한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다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당사자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담아보자 싶었어요.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실까요?
엄마가 삭발한다는 말을 듣고, 동생이 저에게 전화해서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해요. 그러고 나서 엄마와 동생, 제가 3자 대면하는 장면이 있는데 동생이 윤석열 정권이 영 시원찮다고 하죠. 장애인 인권 운동이 지금 이 사회에 필요하다는 걸 정확히 알고 있음에도 엄마가 삭발하는 건 동생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는 장면이라 기억에 남아요.

-‘남실’은 감독님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장애인 인권 운동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인 동생 ‘인찬’이 있고요. 두 분을 가족으로서 바라보는 마음과 영상에 담는 감독으로서 또 기록자로서 바라보는 마음이 달랐을 것 같아요.
장애 운동, 특히 발달장애 운동이 부모들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어요. 최근에서야 ‘피플퍼스트’라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운동이 등장하긴 했지만 거의 20년 넘게 부모들이 운동을 해왔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부모들이 돌봄에 대한 책임감을 내려놓기 위해 돌봄보다 더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게 맞는가예요. 두 번째는 부모들이 운동할 때 어쩔 수 없이 장애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말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것을 듣는 발달장애인들과 비장애 형제들의 마음은 어떨까. 내가 짐이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엄마가 삭발한다고 했을 때 말렸어요. 근데 막상 동생이 삭발을 반대하고 엄마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아니, 가족 때문에 삭발을 안 한다고? 이건 운동가로서의 수치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는 마음도 들더라고요. 그렇게 양가적인 마음이 있었어요. 근데 그 과정에서 엄마가 본인을 지키기 위한 결정을 하게 됐고, 삭발하지 않았다고 해서 타협한 것이 아니고, 운동가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옆에서 해결 과정을 보는 게 흥미로웠어요. 운동을 하더라도 그 안에 참 다양한 욕망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감독님이 ‘이런 영화를 찍을 거야’라고 가족분들에게 말씀해주셨을 때 두 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요?
그전에 저희 가족을 다룬 작품을 하나 찍었는데 그때는 운동 얘기보다는 집을 둘러싼 욕망을 다뤘어요. 이미 한 번 경험을 해봐서 그런지 찍히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고, 엄마는 오히려 우리 가족이 지금 이런 갈등을 겪는 걸 빨리 기록해야 한다고 했어요. 3자 대면도 엄마가 “지금 인찬이가 여기 오고 있으니까 빨리 와!”라고 해줘서 찍은 거예요. 동생은 자신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걸리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보고 나서는 어떤 말씀들을 해주셨나요?
엄마는 공감이 많이 된다고 해주셨어요. 여러 욕망의 내막을 잘 담은 것 같고, 자신의 목표는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동생은 편집본과 최종본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테크니컬한 부분을 지적해줬고요. (웃음)

여인서 감독 ⓒ퍼플레이

-이번 다큐를 찍으면서 엄마와 동생분에게서 새롭게 발견한 지점이나 면모가 있다면요?
엄마는 특별히 없고, 동생이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아직 힘들어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제 장애 등급은 없어졌지만, 옛날에 동생에게 “등급 받으면 복지카드 할인도 되고 영화관 50% 할인도 되는데 왜 안 받냐”고 말한 적이 있어요. 동생이 쿨하게 받아들이길 바랐던 거죠. 그래서 일부러 그렇게 얘기했는데 동생은 지하철 교통카드 소리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다른 것조차 싫다고 했어요. 최근에 동생이 활동지원사와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요.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갔을 때 미용사분이 옆에 계신 분은 누구냐고 여쭤봤는데 활동지원사라는말을 하지 못했대요. 동생에게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고, 내가 여태까지 너무 편하게 말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번 작품이 감독님을 포함해서 가족분들에게 무엇을 남겼다고 생각을 하시나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훗날 돌아보면 또 새롭고 재밌을 것 같아요. 이때 이런 고민을 했구나 싶을 것 같고요. 20대가 정서적으로 불안한 시기인데 나중에 이때를 돌아보면 어떨까 기대도 됩니다.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엔딩이 마음에 들어요. 휠체어 타는 장애인, 발달장애인이 함께 노래에 맞춰서 춤추는 모습이 즐거웠어요. 거기서는 너와 내가 누군지 상관없이 다 같이 손잡고 춤을 추니까요.

-영화는 비당사자로서 인권 운동을 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질문을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그에 대한 답 또한 영화에서 이야기해주셨는데요, 영화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말씀이 있다면요?
영화를 만들 땐 당사자 비당사자를 구분했던 것 같아요. ‘당사자들에게 발언권을 주는 게 유효하지만, 그것에만 매몰되지 말고 조금 빠져 나와보는 게 어때?’라는 기조였다면 요즘은 ‘모두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방향으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얼마 전에 기후위기 운동하는 친구랑 대화를 나눴는데, 제가 참여하고 있는 장애 운동은 당사자들이 당장 당면한 생존의 문제가 있지만 기후위기 운동은 모두가 당사자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모두가 비당사자인 거예요. 결국 당사자가 운동하는 것을 넘어서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모두가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추후 다른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지요.
지금 촬영하고 있는 작품이 있어요. <무경계> 작업을 끝내고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운동하는 단체인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에서 잠깐 일했는데, 그곳에서 친해진 친구를 팔로잉하고 있습니다. 탈시설한 여성 발달장애인인데 시설에서 강제로 클라리넷을 배운 후에도 여전히 클라리넷을 갖고 있고, 심지어 클라리넷이 외로운 시간을 버티게 해준 친구라고 해요. 그 모습을 보고 왜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됐을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그 클라리넷을 매개로 탈시설한 여성 발달장애인들의 다양한 욕망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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