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퍼플레이가 만난 사람들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상주> 박성연 배우

퍼플레이 / 2020-05-28


#세상을_바꾸는_여자들
2020.5.15|박성연 배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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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연 배우 필모그래피
2019  <상주> 주연
           <82년생 김지영> 조연
           <양자물리학> 조연
2018   <우리 지금 만나> 조연
            <탐정: 리턴즈> 조연
            <독전> 단역
2017  <살아남은 아이> 단역
            <어른도감> 조연
             <채비> 단역
2016   <여고생> 단역
              <원라인> 단역
              <그래, 가족> 조연
              <가려진 시간> 단역
               <곡성> 조연
2015    <고양이춤> 주연
              <물구나무 서는 여자> 주연
2014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조연
               <카트> 단역
2012    <목격자의 밤> 주연
               <마이 라띠마> 단역
2011    <의뢰인> 조연
2010    <혜화, 동> 조연
               <의형제> 단역
2004    <양아치어조> 단역
2003    <사춘기> 주연
2000    <로맨스 뽀뽀> 조연
1999    <박하사탕> 단역

박성연 배우 ©퍼플레이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덩그러니 선 채로 혼자 밥을 때우는 사람이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무시와 폭언을 일삼는 남편, 생활반경이 집으로 굳어진 그에게서는 어떠한 의욕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 삶의 재미도 자신의 이름도 잊은 지 오래다. 그는 과연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상주>(차정윤, 2019)는 갱년기 여성 상주가 예상치 못한 인물과의 만남으로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상주라는 이름 대신 누군가의 엄마 혹은 아내로 불리던 그에게 뜻밖의 사건이 발생하고, 낯선 누군가의 상주(喪主)가 되기로 결심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영화는 상주의 변화를 통해 누구나 ‘살던 대로 살지 않을 권리’, ‘내가 나 자신일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말한다.

박성연 배우의 상주는, 차정윤 감독의 적극적인 구애로 탄생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여러 이유로 출연을 거절하려 했지만, 감독의 기분 좋은 설득 끝에 결국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경북 상주에서 촬영해야 해 여러모로 힘든 점도 있었지만, 모든 장면에 심혈을 기울이며 촬영에 임하는 감독과 스태프들 덕분에 즐겁게 찍었다. <상주>로 관객과 만날 일이 많았다는 그는 이번 계기를 통해 영화의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다고도 했다. 

<상주>의 영어 제목은 ‘Finding Little Star’, 즉 ‘작은 별을 찾아서’다. 작은 별은 어떤 누군가를 의미할 수도, 혹은 내 안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희미해져버린 반짝거림을 뜻할 수도 있을 테다. 상주가 작은 별을 찾아간 뒤 얻는 깨달음은 잔잔하지만 뜨겁고도 강렬한 울림을 전한다.   

중학생 때 아동극단에 들어가 연기를 시작한 것까지 포함하면 박성연 배우의 연기 인생은 어느덧 30여 년에 달한다. 자신의 능력을 믿는 이에게서 엿볼 수 있는 당당한 태도와 특유의 쾌활함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하다. “앞으로 가늘고 길게 갔으면 좋겠어요. 우스갯소리로 하는 게 아니라 ‘가늘고 길게’가 굉장히 중요하고 소중한 거더라고요. 가늘어도 좋고 튀지 않아도 좋은데 ‘저 배우의 연기를 계속 보고 싶다’는 말을 듣는 게 배우로서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박성연 배우 ©퍼플레이

-퍼플레이어 분들을 위해 배우님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1975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두 돌이 지날 무렵 서울 구로구 온수동으로 이사와 살게 된, 거의 서울 사람인 박성연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디테일하게 자기소개 해주신 분 처음이에요.
저도 이렇게 소개해본 거 처음이에요(웃음). 

-요즘에 어떻게 지내세요? 
요즘에는 드라마 하고 있어요. 넷플릭스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 시즌2 촬영이 좀 남긴 했는데 제 분량은 며칠 전에 끝났고, 지금은 tvN 드라마 <청춘기록> 촬영하고 있어요. 이제 곧 KBS 드라마 <도도솔솔라라솔> 촬영도 들어갑니다. 

-배우님 첫 영화가 <박하사탕>(이창동, 1999)이더라고요. 연극무대에만 서다가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는 점에서 소감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장마>라는 단편영화가 제 첫 영화고 <박하사탕>은 첫 상업영화예요. 제가 중학교 때부터 연극을 해서 영화는 나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대학교 때 선배였던 조봉구 감독님이 ‘너 아니면 안 된다’고 해서 같이 하게 됐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연극과는 또 다른 연기의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이후에 단편영화 작업을 여러 개 하게 됐죠. 졸업 즈음 <박하사탕> 공개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마침 이창동 감독님이 <장마>를 본 거예요. 그래서 ‘아, 됐구나’ 싶었는데 떨어졌어요. ‘연극에 뼈를 묻으련다’라는 생각으로 극단에 들어갔는데, 소풍 장면에 필요한 공원들 역할로 오디션에 떨어진 분들을 다시 불렀어요. 극단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무조건 하겠다 그랬죠(웃음). 

-극단 일이 많이 힘드셨어요?
엄청 고됐어요. 일어나자마자 밥해야 되고, 밥 하다 연습하고, 다시 소품 만들러 가고. 잠을 거의 못 잤어요. 영화 촬영하는 3박 4일이 저한테는 휴가였죠. 


박성연 배우 ©퍼플레이

-중학교 때 아동극단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초등학교 때 1인극을 만들어서 선생님한테 보여드린 적이 있다고요. 
저도 그런 재능이 있는 줄 몰랐어요.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학예회 준비하면서 제가 대본을 쓰고 있더라고요. 혼자 여러 역할을 소화하면서 1인극을 했어요. 정말 재밌었어요. 저희 집이 그때 세탁소를 했는데 선생님이 세탁소에 우연히 들르신 적이 있어요. 부모님을 보고 이런 말을 하시더라고요. “성연이 어머니 아버님, 얘가 얼굴도 예쁘고 연기도 잘하고. 탤런트 시키세요.” 선생님이 가시자마자 엄마 아빠는 화를 내셨죠. “딴따라를 시키라니!”라면서. 

-그때부터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가요?  
그때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건 베스트 프렌드였던 중학교 때 친구였어요. 그때만 해도 연극 자체를 본 적이 없어서 나중에 탤런트나 됐으면 했는데, 이 친구가 ‘나는 연극배우가 될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데 뇌리에 딱 꽂히면서 너무 멋있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둘이 연극 보러 다니고 극단에 들어갔죠. 당시에는 하이틴 잡지 뒤에 단원 모집 글이 실렸거든요. 몇 달을 뒤져서 중학생을 뽑는 아동극단을 발견했죠. 그 친구랑 같이 들어가서 쇼핑센터에 몇 년을 공연 다녔어요.

-부모님 설득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허풍 들어서 바람났다고 맨날 두들겨 맞았는데 그래도 포기 안 했죠. 고등학교 가면 잠잠해지겠거니 했는데 갑자기 예고를 간다고 하니까 엄마 아버지가 뒷목을 잡으셨어요. “아빠, 저 안양예술고등학교…”라고 입을 떼는데 말 끝나기도 전에 따귀가 날아왔어요. 아버지가 되게 보수적이세요. 부모님 무서워서 가출은 못하고 수련회 가기 전에 눈물자국 남긴 편지 네 장을 놓고 갔어요. (혹시 외동 따님이세요?) 아니요. 오빠 있어요. 너무 보수적인 집안이어서 오빠는 외박이 되는데 저는 딸이어서 외박도 못했어요.

-너무 힘드셨겠어요.
네. 근데 다행히 엄마가 눈물의 편지를 읽으셨더라고요. 엄마가 절 부르시곤 말하셨죠. “정말 연극이 하고 싶니? 꼭 안양예고 가야겠어? 엄마는 네가 인문계 고등학교 나와서 대학 가고 좋은 직업 가지면 좋겠는데.” 그 말에 울컥해가지고 꺽꺽거리면서 말했어요. “엄마, 연극 안 하면 죽어서 구천을 떠돌 것 같아”라고. 그 말을 듣더니 엄마가 ‘얘가 장난이 아니구나’ 싶어서 몇 달 동안 아빠를 설득했어요. 아빠가 조건을 단 게 ‘우리는 너 못 밀어준다. 대신에 학교 가서 1등을 해라’였어요. (정말 1등 하셨나요?) 네. 장학금도 받았어요. 

-부모님이 배우 활동을 지지하게 된 순간은 언제예요?
드라마 하고 나서부터요. 연극할 때는 늘 속상해하셨어요. 연극 쪽에서 인정을 받아도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니까. 지하 극장에서 연습하는 것도 안쓰러워하시고. 영화를 하게 되면서 목돈이 들어오니까 연극으로 빚진 걸 그걸로 메꿨는데 부모님이 좋아하셨죠. 그런데 드라마에 나오고 나서 반응이 확 다르더라고요. 영화는 부모님이 극장을 찾아가서 봐야 하는데 드라마는 집에서 볼 수 있고 친척 분들한테 자랑하실 수 있잖아요(웃음). 


<상주> 스틸컷

-<82년생 김지영>의 김 팀장과 <상주>의 상주는 직업이나 성격이 완전히 반대되는 인물들이잖아요. 상주와 김 팀장을 연기하면서 포인트를 다르게 잡아야 했을 텐데, 각각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82년생 김지영>은 <상주> 촬영하고 나서 8개월 정도 뒤에 찍었어요. 상주는 이름을 잃어버린 사람이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거잖아요. 근데 상주가 자신을 찾게 됐을 때 극적인 변화를 주고 싶진 않았어요. 섬세하고 미묘한 변화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죠. 자존감이 바닥이던 사람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을 때 생명력이 빛을 발하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감독님이랑 저랑 모든 스태프들이 가장 신경 쓴 장면이 마지막 장면이에요. 그 장면을 위해 앞의 모든 톤을 죽였어요. 그리고 김 팀장은 그저 ‘멋있는 캐릭터’로 보이지 않기를 바랐어요. (근데 보자마자 ‘멋있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연기를 잘하니까(웃음). 감독님이 저랑 공연을 한 적이 있어서 제가 어떤 식으로 김 팀장 역을 소화해 낼 것이란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도 김 팀장이 정형화된 커리어 우먼이 아니길 바랐고 저 역시도 그랬어요. 그래서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츤데레 같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죠. 

-그동안 정말 많은 시나리오를 읽어보셨을 텐데, <상주>의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땐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해요. 
‘시나리오를 어떻게 이렇게 잘 썼지?’ 싶었어요. 감독님이 20대 후반이라고는 했지만 학생이었는데 너무 잘 쓴 거예요. 그리고 영화 찍는 내내 감독님부터 모든 스태프들까지 정성을 들여서 한 신 한 신 찍는데,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정말 재밌었어요. 결과물도 잘 나왔고요. <상주>로 GV를 많이 다녔는데, 덕분에 영화가 가진 생명력을 처음 느껴봤죠. 무기체라고 생각했던 영화가 관객과 만나면서 어떻게 유기적인 화학작용을 일으키는지 알게 됐어요. 단편은 보통 여러 작품들과 함께 상영하는데, 어떤 섹션으로 묶이느냐에 따라서 관객 반응도 다르더라고요. 덕분에 영화가 가진 생명력이 이런 거구나, 깨닫게 됐어요. 


<상주> 스틸컷

-<상주>에서 상주가 작은별님의 집을 찾아가던 도중, 할머니 한 분에게 길을 물어보잖아요. 카메라가 두 인물을 멀리서 잡는데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더라고요. 그 할머님은 실제로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 분이신 건가요?
다 즉흥 미팅이었어요. 차정윤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했죠. 그 장소도 즉석에서 헌팅한 곳이에요. 촬영장소를 찾으러 다니는데 올라가는 길 옆에 있는 밭에서 할머님이 일을 하고 계셨어요. 차정윤 감독이 할머니에게 사근사근하게 말을 붙이고, 그 자리에서 캐스팅했어요. 그리고 찍은 장면을 모니터를 해드리는데 할머니가 무척 좋아하셨죠.

-배우님 마음에 가장 남는 대사나 장면이 있다면요?
딸과 대화하는 장면이요. 그 장면에 대해서 처음엔 감독님과 의견이 달랐어요. 딸이 상주를 강력하게 설득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툭툭 던지는 말들로는 상주가 움직이지 못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감독님은 ‘상주는 굉장히 강한 사람이고, 딸이 설득해서 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움직여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찍고 나니까 감독님 말이 맞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완성된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상하게 그 장면이 좋더라고요. 딸이 침대에 덜렁 누워서 엄마와 대화하고, 상주도 딱히 갈 거라는 내색을 안 하는데, 다음 컷에 가방 메고 가잖아요.

-저는 그 장면을 보고 딸 은지가 상주의 든든한 조력자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진짜 엄마와 딸의 대화를 보는 것 같았고, 딸이 상주를 강하게 설득하는 건 아니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큰 힘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극중에서 딸 역할로 나온 윤혜리 배우와는 처음 함께한 작품인데 호흡은 어땠나요?
너무 좋았어요. 혜리 연기 톤이 너무 매력적이더라고요. 별거 안 하는데 그 안에 다 있어(웃음). 보면 볼수록 매력 있어요. 


<상주> 스틸컷

-작은별님이 자신을 소개하길 30대 여성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할머님이 등장하잖아요. 만약 실제로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배우님은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해요.
112에 신고하고 바로 도망갈래요(웃음). 작은별님을 연기해주신 박혜진 선생님하고는 <카트>(부지영, 2014)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상주>에서 작은별님 캐릭터를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게 잘 살려주셨어요. 그 에너지가 상주한테 전달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상주가 작은별님의 집에 온 뒤 보여주는 작은 변화들도 눈에 띄었어요. 죽은 고양이를 보고 차도에 노잣돈을 던져준다든지, 남편에게 걸려온 전화에 대고 손가락 욕을 한다든지. 
노잣돈을 던져주는 건 상주가 원래 가지고 있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로드킬을 당해 죽은 동물에게 존중을 표하는 거잖아요. 상주가 사회적인 관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자기만의 룰을 갖고 있는 거죠. 근데 손가락 욕을 하는 장면에선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상주한테는 이게 엄청난 욕과 같은 거잖아요. 제가 원래 손가락 욕 잘하거든요. 아시죠? <독전>에서(웃음). 근데 <독전>에서의 손가락 욕이 워낙 강해서 <상주>에서는 좀 다르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굉장히 살살했어요. 

-영화에서 남편이 너무 못됐잖아요. 첫 장면에서도 상주한테 옷으로 면박을 주는데, 상주는 그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죠. 그만큼 삶의 의욕이 떨어져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늘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인이 박혔다고 해야 되나. 

-결혼하고 나서 그렇게 변한 걸까요.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걸까요? 
상주를 갱년기 여성으로 설정한 이유가, 차정윤 감독이 본인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GV 같이 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은 건데 가끔 이름을 불러드리고 싶어서 엄마한테 ‘인경씨, 인경씨’ 그런대요. 엄마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상주한테도 이름을 주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상주도 그전에는 어떤 일을 했을 테지만 결혼과 육아로 점점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갔겠죠. 게다가 갱년기라면 신체적인 변화가 생기고 노화가 시작되면서 허탈감도 느끼고, 그 모든 것들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박성연 배우 ©퍼플레이

-작은별님이 상주에게 해주는 말들도 참 가슴에 와 닿았어요. “재미있게 살려면 두근두근하면서 살아” “가끔은 다 놔버려도 괜찮아” 라고 말해주는데, 어떤 진리와 같은 말들을 거창한 문장이 아닌 일상의 언어로 해준다는 점이 좋았어요.
많이 와 닿죠. 명대사는 거의 작은별님이 갖고 계세요. 저는 그 대사가 너무 좋았어요. “민들레야, 넌 이름이 뭐니?” “상주요. 오상주.” “상주…. 상주야, 가끔은 놔버려도 돼.” 제가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하나고, 그때 선생님 육성이 정말 좋았어요. 

-상주와 작은별님의 만남이 굉장히 마법 같은 만남이지만, 그게 서로의 의지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뜻깊었어요. 작은별님이 쪽지를 보내야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았다면, 그리고 상주가 작은별님을 보러 가야겠다는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둘은 만나지 못했을 텐데, 서로의 의지로 결국 만남이 성사됐잖아요. 
그러니까요. 시나리오를 너무 잘 썼죠. (장편으로도 제작되면 좋겠어요.) 내가 갱년기 때 합시다!

-‘상주’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도 궁금해요.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주인공 이름이 상주이고, 나중에 장례식에서 상주가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처음부터 영화를 상주에서 찍을 계획이었더라고요. 너무 멀어서 고민했는데, 차정윤 감독이 말을 예쁘게 잘해서 넘어갔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참 정성을 다해요. 

-저희 사이트 오픈할 때 차정윤 감독님이 짧은 편지를 써주신 적도 있어요. 그거 받고 모두 감동했었거든요.
저한테 메일 보냈을 때도 이만큼 보냈더라고요. 영화 촬영할 땐 “아우, 지겨워. 너의 사랑 너무 지루해!” 그럴 정도였어요(웃음). 



<상주> 스틸컷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상주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여성분들이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상주에게서 위로를 받는 분도, 희망을 발견하는 분도 계실 텐데 그분들을 위해 배우님이 한 말씀 전해주신다면요. 
제가 할 말은 없고요. 작은별님이 다 해주신 것 같아요. 작은별님이 수첩에 써놓은 일기 있잖아요. ‘오상주. 예쁘고 괜찮은 애.’ 상주 대신에 자신의 이름을 넣고 “당신은 참 예쁘고 괜찮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해주세요. 

-저희가 영화마다 한 줄 카피를 달고 있는데, 배우님이 <상주>에 카피를 달아주신다면요? 
반짝반짝 작은 별. 상주가 작은별님을 만나러 상주에 가는데, 작은별님이 정말 반짝반짝 빛나주잖아요. 돌아가시고 나서도 상주에게는 반짝거림으로 남아있겠죠.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영원히는 아니겠죠. 사랑도 영원하지 않은데, 뭐. (웃음) 

-중학교 때 연극을 시작한 것까지 포함하면 배우가 된 지 30년이 됐는데, 거의 평생을 연기하며 살아오신 거잖아요. 배우라는 직업의 가장 좋은 점 혹은 연기를 하면서 얻은 교훈은 뭐가 있을까요?
배우라는 직업이 참 멋있지만 형벌 받는 것 같기도 했어요. 너무 힘들 때는 다른 재주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예전에는 (연기에 대한 열정을) 어떻게든 안 떨어뜨리려고 붙들고 있다가 데였다면, 지금은 온도조절이 가능한 단계까지는 온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이 가장 좋은 건 특정 인물을 연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보게 되는 거예요. 어릴 땐 내가 맡은 역할을 어떻게 잘 표현할까만 고민했는데, 이젠 내 마음이 움직여야 상대 배우뿐만 아니라 관객과 시청자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야기가 담고 있는 메시지, 인물이 던지는 화두를 기술적으로만 표현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너는 어떻게 살아갈래?’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살아가려고요.


박성연 배우 ©퍼플레이

-올해 데뷔 20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걸어왔던 배우인생에 대한 소회를 말씀해주신다면요? 
그동안 왜 그렇게 힘들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이제는 즐겁게 하고 싶어요. 무대는 저에게 거의 신앙 같은 거였어요. 그래서 요만큼의 실수도 용납 안 하고, 실수 조금만 하면 ‘박성연 넌 배우 자격 없어. 연극하면 안 돼’라며 자책하고, 저에게도 타인에게도 엄격했어요. 근데 이젠 그렇게 못 살겠더라고요. 뜨거울 때 뿜어낼 수 있었던 몰입감이 있었죠. 그런 어마어마한 에너지는 쏟을 만큼 쏟았고, 이제는 인간 박성연이 행복해지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 2~30년은 더 연기하셔야 하잖아요. 
아이, 50년! (그렇네요. 100세 시대니까.) 50년은 너무 긴가? 지금 46세니까 40년. 86세까지 할게요. (계속 지켜볼 거예요.) 잠깐만. 34년 더 할게요. 

-앞으로 34년 더 연기해야 하는데 배우로서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죽기 전에 꼭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요?
그런 거 없어요. 가늘고 길게 갔으면 좋겠어요. ‘가늘고 길게’가 굉장히 중요하고 소중한 거더라고요. 가늘어도 좋고 튀지 않아도 좋은데 ‘저 배우의 연기를 계속 보고 싶다’는 말을 듣는 게 배우로서 가장 행복한 것 아닐까 싶어요. 

-배우님의 퍼플레이 추천작을 말씀해주세요.
<겨털소녀 김붕어>요! 사춘기 소녀의 2차 성징을 간결하고도 귀엽게 그려내 정말 좋았습니다. 겨털이도 너무 귀여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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