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퍼플레이가 만난 사람들

조용하지만 확실한 한 걸음

모래로 만든 이태원에서 시국을 걱정하는 페미들과 그렇게 우리는 매일매일, 10년을!

퍼플레이 / 2020-03-05


#세상을_바꾸는_여자들
2020.2.15|강유가람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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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가람 감독 필모그래피
2019  <우리는 매일매일> 연출
2017  <시국페미> 연출
2016  <이태원> 연출(2019. 12. 개봉)
2015  <진주머리방> 연출
2014  <소장님의 결혼> 출연
2013  <자, 이제 댄스타임> 공동제작, 프로듀서
2011  <모래> 연출
2009  <왕자가 된 소녀들> 조연출, 배급PD 

강유가람 감독 ©퍼플레이

지난 해 12월 5일. 비교적 작은 규모로 개봉한 후, 꾸준히 입소문을 타며 해를 넘긴 후에도 꿋꿋하게 상영관을 지켰던 작품이 있다. 포스터 ‘힙’하기로 순위를 매기자면 오스카상도 받았을 것만 같은 <이태원>이다. 그리고 감독이 직접 전국을 돌며 음주를 하는, 아니 ‘페미 친구’를 만나고 다니는 콘셉트의 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이 2019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경쟁부문 작품상 수상을 시작으로 각종 영화제 상영을 이어나갔고, 바로 몇 해 전에는 당당히 광장에 선 페미니스트를 기록한 <시국페미>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모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영화 채널에서는 극영화 연출작인 <진주머리방>이 바로 얼마 전까지 상영됐었다. 모두 한 사람의 작품이다. 최근 가장 ‘핫 라이징’하고 있는 다큐멘터리스트, 강유가람 감독이다.

누군가에겐 요 최근 갑자기 ‘뿅’하고 눈에 들어온 이름일지도 모르겠으나, 강유가람 감독은 프로듀서, 연출, 배급PD까지 두루 섭렵한, 대략 헤아려도 10년을 훌쩍 넘긴 베테랑 영화인이다. 

3월 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세상을 바꾸는 여자들’을 키워드로 만나고 싶은 여성 영화인을 꼽을 때 역시 이견은 없었다. <이태원>의 막바지 상영과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이어지는 <우리는 매일매일>의 공동체 상영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강유가람 감독을 서울 인디스페이스에서 만났다. 묻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 많았다.

<왕자가 된 소녀들> 포스터(왼쪽)와 스틸컷

-<왕자가 된 소녀들>의 조연출, 배급PD가 프로필의 시작이다. 영화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왕자가 된 소녀들>은 김혜정 감독과 학교 선배이자 지금 베를린 자유대학에 있는 김신현경 교수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됐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여성국극 선생님들의 구술사 프로젝트였고, 처음부터 영화를 만들 생각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다 보니 워낙 흥미로운 내용이라 선배들이 이를 다큐기획으로 발전시키게 됐고, 그 과정에서 ‘문화기획집단 영희야 놀자’를 만들게 됐다. 처음엔 조연출을 맡아 녹취도 풀고, 편집 초기 단계를 세팅하는 일들을 했다. 영화가 완성된 후 개봉을 하고 싶었는데 받아주는 배급사가 없었다. 영진위 개봉지원(영화진흥위원회에서 제공하는 개봉지원 사업)을 받지 못해 배급사들이 더 부담스러워했던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오래 고생해서 만든 작품인데 그대로 묻히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우리끼리라도 해보자’라고 의기투합하게 됐고 그 때부터 배급PD가 됐다. 배급업 등록도 그 때 했다.

-직접 배급을 한다는 게, 그것도 개봉 준비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뭘 잘 몰랐으니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돈이 많이 들고 힘들 줄 알았으면 안 했을 거다. 배급사가 괜히 있는 게 아니란 걸 그 때 깨달았다(웃음). 당시 텀블벅으로 크라우드 펀딩도 했었는데 목표는 500만원이었다. 왜 그리 소박했었는지. 하지만 그 돈 모으기도 엄청 어려웠다. 지금처럼 텀블벅을 통한 모금이 활성화되어 있는 시절도 아니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목표금액을 간신히 채우고 우리가 별도로 200만원 정도 더 투자해서 가까스로 개봉했다. 그 당시 미로스페이스에 있던 인디스페이스, 아리랑 씨네센터, 강남에 있던 인디플러스까지 포함해서 4개관 정도에서 개봉했던 것 같다. 서울 개봉 후 지역 독립영화관 한 바퀴 돌고. 그래도 그 때 꽤 많이 봤다. 1800명?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영희야 놀자’에서 직접 영화 제작도 하고 배급까지 했지만, 타이틀은 여전히 ‘문화기획집단’이다.
함께하는 멤버들이 영화 작업을 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신현경 선생님처럼 책도 쓰고, 사진 전공인 홍혜미 감독도 있고. 구성이 다양하다보니 영화뿐만 아니라 전시회나 출판 등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명명을 ‘문화기획집단’으로 하게 되었고, 지금은 아주 느슨한 정도의 네트워킹을 유지하고 있다. 전업으로 영화를 연출하는 사람은 나와 김혜정 감독뿐이다.

-‘영희야 놀자’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었나.
멤버 대부분이 70년대 후반에 태어났는데, 당시 교과서에 가장 흔하게 나오는 이름이 철수와 영희였다. 동시대 여성들을 부르는 뜻을 담아 짓게 됐다. “영희야 노올자~” 하는 느낌. 그런데 요즘 교과서에는 영희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지금 세대들이 들으면 그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모래> 스틸컷

-<모래>가 첫 연출작이었는데, 당시 큰 영화제에서 상도 받고 상당한 주목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 때는 여성감독의 영화 혹은 여성주의 맥락에서 영화가 읽혔다기보다 부동산, 재개발, 88만원 세대 류의 청춘담론 안에서 회자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당시는 지금처럼 페미니즘 이슈가 활발히 논의되는 시점이 아니기도 했고 ‘세대론’이 떠오르던 시절이기도 했다.
기존의 독립 다큐멘터리에서 부동산이나 재개발 이슈를 다루는 것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어느 정도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기존의 다큐 씬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사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해나가는 방식이 그 전에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강남, 특히 은마아파트라는 배경과 소재를 신선하게 여기고 부동산에 대한 소시민적 시각에 많은 의미를 부여해준다는 것을, 상영을 시작하고 나서 알았다. 세대론적인 해석도 그렇고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점은 물론 감사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여성주의자 입장에서 한국의 가족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표현하고 싶었고 그런 식으로도 읽히길 바랐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진 않았다. 주서사가 아버지를 중심으로 짜여있어서 더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한국의 가족 시스템은 철저히 가부장적인 틀 안에서 구축돼있다. 특히 핵가족 시스템은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이라는 점에서 그에 대한 비판의식도 담고 싶었는데, 영화가 여성주의적 맥락에서 읽히지 않은 점은 아쉽다. 당시 <왕자가 된 소녀들>의 개봉과 <모래> 배급이 거의 동시에 이뤄졌는데 <왕자가 된 소녀들>은 주로 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고 <모래>는 여성영화제를 뺀 독립영화제 중심으로 돌게 되더라(웃음).

-작품이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 배급 루트가 달라지는 셈이었겠다.
정말 완전히 달랐다. <모래> 역시 당시 선배들과 스터디와 세미나를 하면서 만든 건데 작품이 가는 길 자체가 달라지더라. 그 현상을 보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무튼 부족함이 많은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어서 나로서는 얼떨떨하기도 했고, 감사하기도 했다. 그래서 두 번째 작품을 만들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이태원> 포스터

-두 번째 작품인 <이태원> 초기 기획 당시 모 영화제에서 기획안 피칭하는 걸 봤었다. 지금 완성된 버전보다 훨씬 더 ‘공간’에 집중하는 기획이었고, 그래서 <모래> 다음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이태원>이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모래>를 만들면서 공간성과 장소성을 영화에 잘 녹여내는 것이 나의 주된 관심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두 번째 작업까지 한 발 내딛기가 어려웠다. 이숙경 감독님의 ‘두 번째 영화를 위한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진주머리방>이라는 단편을 만들었었다. <이태원>의 초기 편집본 중 청년 창업가들이 많이 나오는 버전이 있는데, 그 버전과 <진주머리방>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

-혹시 <진주머리방> 뒷부분에 등장하는 청년들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이태원에서 만난 청년 창업가들에게 영향을 받아 생각해낸 캐릭터들이다. 이런 작업들을 하면서 ‘아, 나는 계속 이런 방식으로 해나가겠구나. 이런 것에 관심이 많구나’라는 생각들을 하게 됐다. 이태원이라는 공간의 변화도 더 담고 싶었는데, 아주 오랫동안 팔로우한 장소가 아니었고 기획을 한 뒤 촬영을 시작하게 된 거라 작품 안에서 공간의 변화를 잘 담아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진주머리방> 스틸컷

-지금 강유가람을 호명하는 ‘여성의 시간과 공간을 기록하는 작가’라는 타이틀이 <이태원>을 통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 것 같다. 영화가 만들어진 건 <이태원>이 먼저지만, 관객들에게 보여진 건 <시국페미>가 <이태원>보다 앞선다. 그 사이 <시국페미>는 어떻게 시작된 기획인가. 제작 단계에서 겹치는 시기가 있었나.
<이태원>은 2017년 인디포럼 상영 이후 일단 제작을 마친 단계였다. <시국페미>와 오버랩되지는 않는다. <시국페미>는 원래 계획에 있었던 작품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 퇴진운동’(이하 퇴진행동)이 발생한 뒤 미디어 활동가로 참여하게 됐고, 김일란 감독님으로부터 옴니버스 영화 중 한 꼭지를 제안받아 시작하게 됐다. 

<이태원>보다는 오히려 <우리는 매일매일>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당시 이미 <우리는 매일매일>을 기획하고 촬영을 하던 중이었고, 그를 위해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20대 페미니스트들을 팔로우하던 중이었다. 당시 강남역 사건이 터지고 낙태죄 폐지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페미니스트들이 모두 그 현장에 있었다. 그 와중에 탄핵 정국까지 이어지다보니 그 페미들이 또 광장에 나가게 되고…. 이들이 모인 ‘페미존’(박근혜 정권 탄핵 정국 당시 페미니스트들이 광장에서의 혐오발언·문구를 지양하고 평등집회를 추구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을 중심으로 만든 작품이 옴니버스에 포함된 10분짜리 버전이었다.

그렇게 그들을 계속 팔로우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대체 어떤 마음으로 광장에 나가게 되었을까’ ‘어떤 배경에서 이런 파워풀한 소리들을 내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런 백그라운드까지 매핑(mapping)하는 시도를 한 것이 40분짜리 확장 버전인 지금의 <시국페미>다.

-<우리는 매일매일>은 굉장히 오래된 기획이었나 보다.
<우리는 매일매일>은 사실 <이태원> 전에 기획서가 한 번 나왔었다. 당시 제목은 <마이 페미니즘>, <나의 페미 친구를 찾아서> 이런 거였다(웃음). 1차 기획안을 써서 ‘영희야 놀자’ 멤버들과 주변 친구들에게 공유했는데 대부분 회의적이었다. ‘이런 건 친구들끼리 보고 말 것 같다’는 반응도 있었고. <모래> 이후 다양한 기획을 할 때였다. 당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됐을 때였는데 ‘그를 지지하는 중장년 여성들을 찍어볼까’ ‘대체 박근혜는 왜 대통령이 되었나, 이런 걸 만들어볼까’ 하는 얘기도 하고(웃음). 지금 문창현 감독님이 <구미의 딸들>이라는 다큐를 만들고 계신데 엄청 기대된다. 당시엔 어떤 식으로든 페미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 젊은 페미니스트들을 팔로우하긴 했었다. 

강유가람 감독 ©퍼플레이

-<시국페미> 등장인물들도 그 때 이미 촬영 대상이었던 건가? 등장인물 섭외는 어떻게 했나.
그때는 인물을 정해서 팔로우하던 건 아니었고, 사전조사 차원에서 주로 시위나 집회 현장을 따라다닐 때였다. 당시가 아마 ‘페미당당’이 막 모임을 시작했을 즈음이었다. 그리고 남순아 감독을 통해 페미당당 회의를 기록해달라는 의뢰를 받아 회의에 참관한 적도 있었다. 딱 한 번이었는데 그 때 충격을 많이 받았다. 이 분들이 말하는 거나 회의 방식이 나 또는 우리 세대와 너무 다르고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이들 중 누군가를 섭외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페미당당 분들의 캐릭터를 알게 된 게 그분들이 <시국페미>에 등장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사실 <시국페미>를 위한 인터뷰를 하면서 <우리는 매일매일>도 염두에 두고 있었을 때라 당시 시국에 대한 질문 외에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페미들에 대한 질문도 했었다. 근데 거의 잘 모르더라. 그 과정을 통해 뭔가 ‘단절’된 상태라는 걸 느끼기도 했었다.

-인터뷰는 어떤 식으로 진행했나. 출연자 분들이 말을 다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다.
인터뷰 한 번 할 때 2~3시간씩 길게 했다. 시국에 대한 내용과 함께 소위 ‘영 페미’에 관한 질문들도 했었다. ‘영 페미’ 관련해서도 좋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그 부분은 하나도 쓰지 못해서 아쉽다.

-주요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8명에 대해서는 캐릭터 설정이나 역할 배분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배치를 한 건가.
당시 페미존 관련하여 활발하게 활동하던 단위들, 특히 ‘페미당당’이나 ‘불꽃페미액션’은 워낙 잘 보였으니까 그 분들은 섭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애초 기획이 ‘퇴진행동’에서 시작된 다큐였기 때문에 내부의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인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나영 님이 ‘퇴진행동’의 내부 사정도 알면서 페미존 활동도 같이 하던 분이라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오랫동안 활동을 하면서 젊은 페미들과의 연대에도 적극적인 분이었기에 내 기획의도의 균형을 맞추는, 딱 맞는 조각 같은 분이었다. 또 (구)‘강남역 10번출구 모임’도 그 시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체라고 생각해서 섭외하게 됐다.

<시국페미> 스틸컷

-<시국페미>라는 제목은 어느 시점에 정했나. 제목이 주는 어떤 선언적인 느낌이 있다.
기획서 낼 때 그냥 바로 나왔다. 당시에 찍는 페미, 믿는 페미 등 무슨 무슨 페미가 많았다. 그럼 나도 ‘시국 페미’. 모든 사람들에게 다 각자의 시국이 있는 거고, 지금 우리의 시국을 이야기하자는 맥락에서도 잘 맞는다고 생각해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영어 제목은 
< Candle Wave Feminist >다. 해외에 있는 후배에게 영어제목 추천을 부탁했더니 제안해준 제목이다. 너무 맘에 들어서 바로 결정했다.

-2016년 당시 그 현장을 가장 잘 보여주고, 또 맥락을 잘 짚어주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약간 시간이 지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의 우리는 또 어떤 시국에서 어떤 맥락으로 <시국페미>를 볼 수 있을까.
어찌됐건 2018년 한국사회에 굉장히 많은 성과가 있었다. 그 성과들의 이면에 페미니즘의 부흥이나 역사, 맥락을 살펴볼 수 있는 단초들이 이 작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곧 총선이 다가온다. 좁은 의미에서의 정치 세력화를 생각했을 때 여성의 정치적인 입장이 왜 배제되기 쉬운지를 생각할 때, 그래서 더 소리 내고 더 크게 외쳐야 되는 상황일 때 이 영화가 주는 힌트 같은 것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시국페미>에 등장하는 시위 장면은 대부분 <통금>의 김소람 감독이 찍었다. 박근혜 퇴진운동 당시 함께 활동하던 미디어 활동가, 다큐 감독들이 서로 찍은 소스를 모아서 공유하고 같이 편집본도 리뷰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는데, 어쨌든 그와 같은 시국에 함께 모여 만들어낸 연대의 결과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 출연자 분들 그리고 광장에 함께 있었던 많은 다큐 감독들과의 연대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봐주었으면 좋겠다.

강유가람 감독 ©퍼플레이

-동료 여성감독들과의 연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언급하는 편이다. 박소현, 남순아, 손경화 감독 등의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영희야 놀자’와는 또 다른 네트워크 같아 보인다. 이들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작업을 해나가는지 궁금하다.
박소현, 손경화 감독이랑 작업실을 같이 쓰는데 이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생활공동체 같은 것을 형성하게 됐다. 서로 코드도 맞고 친해지면서 관계를 맺게 됐는데, 우리끼리는 서로 작업에 대한 품앗이 개념에 장벽이 낮은 편이다. 서로 제안을 잘하고 잘 도와준다. 박소현 감독이 <야근 대신 뜨개질>을 만들 때 내가 기획을 도와주고, 서로 촬영이 급할 때 부탁하고. <시국페미> 할 때는 내가 너무 바빠서 소현이가 조연출도 해주고 편집도 많이 도와줬다. 또 <우리는 매일매일>에서는 손경화 감독이 촬영을 같이 해주고. 이런 관계망이 무척 귀하게 느껴진다. 그 둘은 <자, 이제 댄스타임> 작업을 하면서 만났는데, 같이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더 친해진 것도 있다(웃음). 굉장한 안정감을 주는 존재들이고, 비빌 언덕 같은 느낌이다.

-다큐 작업이라는 것이 삶이랑 구분되기 어려운 지점들이 많이 있을 텐데 그런 점에서 안팎으로 힘이 되는 존재들일 것이라는 짐작은 충분히 된다.
물론이다. 다만 우리끼리만 계속 이렇게 할 수는 없고, 더 관계망을 확장하고 다른 작업자들과도 이런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우리끼리야 친분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게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작업하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나. 적정한 임금도 지불해야 하는데, 사실 독립영화 하면서 그게 쉽지 않아 늘 고민이다. <우리는 매일매일>을 작업하면서 남순아 감독을 구성작가로 모셔왔는데 그 경험도 너무 좋았다. 세대차가 있는 관계에서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도 있었고.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관계망을 넓혀나가고 싶다. 그래서 다음 작업은 혼자 하지 말고 옴니버스 형식으로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다.

<우리는 매일매일> 스틸컷

-<시국페미>와 <우리는 매일매일>은 서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두 작품에서 감독님이 등장하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시국페미>에서는 철저히 듣는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매일매일>에서는 본격적인 화자로 등장한다.
첫 작품인 <모래>는 나로부터 시작한 이야기이므로 내가 직접 등장했다. 그 작품을 통해서 많이 성장했고 좋은 기억이지만, 나 스스로가 전면으로 나서는 건 그 다음부터는 하고 싶지 않았다(웃음). 좀 덜 등장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작가의 목소리를 넣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이태원>이었다. <시국페미>도 비슷하다. 작품 안에서 챕터를 나누는 방식이나 자막 같은 것들이 내 목소리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으면서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도 많은 고민이 있었는데, 결국 나의 지인들과 친구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발전하게 되면서 스스로 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구성작가님들의 강력한 푸쉬도 있었고.

-그 와중에 ‘나는 기가 약해서 남의 말을 듣는 편이 더 좋다’는 식의 고백을 들려주신다. 사실 그 내레이션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단단해 보이는 사람이 기가 약하다고?’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좀 소심한 편이고,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의 다른 다큐 감독들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실 <모래> 찍으면서 바로 느꼈다. 아버지가 굉장히 보수적인 분이라 그런 아버지와 정치적인 논쟁을 벌이는 블랙 코미디 느낌으로 기획안을 짰는데, 막상 아버지랑 논쟁이 안 되더라. 아버지 말을 듣고 있으면 다 설득되고 ‘아 네에’ 하게 되고(웃음).

-‘박근혜 다큐’는 못 찍겠다.
어려웠을 거 같다. 그냥 들으면서 ‘아 네에, 그렇군요’ 하다가 오겠지(웃음). ‘너 같은 페미니스트 처음 본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세지 않고, 자기주장도 없다고. 언제나 자기주장과 중심이 정확하게 서 있고, 빻은 말을 들어도 바로바로 받아칠 수 있는 용기가 왜 나에게는 없는가 하는 것이 콤플렉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강직하고 센 사람들만 다큐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들을 잘 담아 전달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약점을 특색으로 만드는 전략을 구사해보려 한다. 틈새시장을 노리는 거지(웃음).

강유가람 감독 ©퍼플레이

-<모래>로부터 따져도 벌써 10년이다. 그 사이 극영화 한 편과 네 편의 다큐 작업을 마쳤고, 그 중에 한 편이 개봉도 했다. 작년에는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시상식에서 ‘신진여성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9년을 지난 소회가 여러 가지로 남다를 것 같다.
사실 <우리는 매일매일> 만들 때 많이 힘들었다. 제작지원이 안 되는 것도 그랬지만, 이게 과연 지속 가능한 건가,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태원>의 개봉도 많이 늦어지는 상황이었고, 오랜 시간 공들여 한 작업이 대중을 만나는 데 어려움을 겪으니 다음 작업에 대한 불안이 자연히 생기더라. 물론 지금도 대단히 밝은 미래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 때는 정말 암담했다. 그래서 작년이 나에게는 더 고마운 한 해였다. 스스로를 너무 비하하지 않게끔 다독일 수 있는 상황들이 만들어졌고, 주변의 작업자들과 더 공고히 연대하면서 ‘나의 속도’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됐다.

-올해 계획은 어떻게 되나.
<우리는 매일매일> 편집을 좀 다시 하면서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장편 극영화 시나리오도 쓰는 중이다. 극영화는 다큐와 또 전혀 다른 영역이라 어렵긴 한데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더 나이 들기 전에 해보려고 한다.

-너무 바쁘게 지내는 거 아닌가. 남의 영화 볼 시간은 있나. 가장 최근에 본 인상적인 작품이 있다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너무 좋더라. 국내작은 <메기>를 가장 최근에 본 것 같다. 그것도 너무 재밌었다. 색감이나 캐릭터를 쓰는 방식 모두 좋았다. 

<그녀들의 점심시간> 스틸컷

<통금> 스틸컷

-퍼플레이 서비스작 중에 추천할 작품이 있다면.
<그녀들의 점심시간> 좋아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통금> 역시 추천한다. <그녀들의 점심시간>은 점심시간을 통해서 여성들의 노동 환경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점심시간이라는 일상의 시간조차도 성별화된 현실을 돌아보며 여성의 삶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다. 김소람 감독의 <통금>은 여성이 처한 현실을 솔직한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시간을 통제하는 것은 통금이 존재하던 시기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결국 여자들이 직접 움직여서 바꿔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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