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아름답게 그려진 지옥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장영선|영화감독 / 2019-12-16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김태용, 민규동|1999|공포|한국|98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포스터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김태용·민규동, 1999)는 현재 5편까지 나온 여고괴담 시리즈 중 가장 궤를 달리하는 영화다. 여고괴담 1편은, 여고 안에서 일어나는 현실적이고 가시적인 ‘괴담’을 장르적 특성을 충분히 살려 구현한 영화로 상업적인 흥행을 거뒀다. 여고괴담 3, 4, 5편 역시 장르적 특성을 외면하진 않았다. 반면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공포영화의 장치들은 대체로 일관적인 데 반해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다. 게다가 영화 후반부, 공포영화라면 마땅히 마지막 한 방이 나와야 할 바로 그 시점에 스크린에서는 죽은 효신(박예진)의 얼굴이 학교 천장을 가득히 뒤덮는다. 어쨌든 그 장면에서 공포를 느끼기란 어렵다. 여기서 관객의 반응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한 순간도 기대를 충족하지 못해 실망한 관객과 그 장면에서 슬픔을 느낀 관객. 

영화 도입부에서 시은(이영진)과 효신은 빨간 끈으로 다리가 묶인 채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영원히 풀어지지 않을 것 같던 끈이 풀리고, 시은은 혼자 수면 위로 빠져나오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을 붙잡는 효신의 어깨를 발로 내리눌러 밀어버린다. 효신은 수면 위로 올라가려는 의지를 잃고 그저 가라앉는다. 여기서 이미 우리는 영화의 전체 내용을 알 수 있다. 효신은 죽을 것이고, 그 죽음의 이유에는 운명의 빨간 끈으로 묶여있다고 생각했던 시은의 배신이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아직 장르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을 수 있다. 효신에게 엄청난 한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한국의 공포영화는 대개 한이 문제이지 않은가?

게다가 시은은 머리가 짧고 키가 큰 육상부로, 여고에서 특히 인기가 많은 타입이다. ‘그래서 저렇게 되었나?’라고 생각하던 그때, 또 다른 여학생이 등장한다. 개구멍으로 등교를 하고서도 명랑하게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는 민아(김규리)는 수돗가에 떨어져 있는 효신과 시은의 교환일기를 들춰보며 일기장에 쓰여있는 첫 키스 이야기를 비웃는다. 그 순간 나는 민아를 미워하게 됐음을 고백한다. 민아가 삼각관계의 한 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즉 민아가 효신과 시은의 사랑을 방해하는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스틸컷

나는 이 영화가 개봉하던 당시에 영화 속 그들처럼 여고를 다니고 있었다. 세기말이었고,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한 팬픽을 다단 인쇄해 교과서 사이에 끼워 보았고, 학교에는 인기 많은 여학생들과 그들을 동경하는 여학생들이 있었다. 나에게 영화의 초반부 전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웠을 뿐 아니라 동시에 아주 확실한 동시성을 가진 채 다가왔다. 게다가 (막장 드라마에 익숙한) 한국인의 특성까지 합쳐져 나는 삼각관계에 놓인 이들이 치정 싸움을 하다가 한 명이 한을 품어 귀신이 되고 모두에게 복수를 하는 것까지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전혀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뜻밖에도 효신은 학교에서 자살한다. 효신은 왜 죽었는가. 이 영화는 그것을 쫓는다. 
영화는 아주 현실적으로 여고생의 생활을 보여준다. 다른 여고괴담 시리즈에는 (감독이 의도했든 아니든) 여고생이라는 존재에 다소 판타지가 섞여 있었지만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고생들에게는 그 어떤 판타지적 시선도 가해지지 않는다. 이들은 대체로 시끄럽고, 대화에 자연스럽게 욕설을 섞어 쓰고, 남자 선생님을 좋아하면서도 그에 대한 음담패설을 하기도 한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보이는 태도 또한 일관성이 없다. 한 명이 울음을 터뜨리자 여기저기서 따라 울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처럼 시끄럽게 떠들며 웃는다. 이 모든 것은 여지없이 현실적이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스틸컷

그에 반해 학교에서 이뤄지는 효신과 시은의 사랑은 환상적이다. 아무도 없는 음악실에서 피아노 줄을 끊어 마음을 보여주고(그걸 끝까지 선생들에게 걸리지도 않고!) 내가 다니던 학교에선 언제나 막혀 있었던 옥상 문을 열고 들어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며(그런 순간을 수위 아저씨에게 걸리지도 않고!) 무려 텔레파시도 통한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만을 원한다. 누구나 꿈꾸던 첫사랑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바로 이들의 사랑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면, 효신이 지나치게 튀는 존재라는 것이다. 영화 초반부에서 효신은 수업시간에 아주 긴 시를 발표한다. 효신의 짝인 연안(김재인)이 발표한 시에는 너그럽게 웃어줬던 아이들이 효신에게는 침묵을 유지하고 싸늘한 시선을 던진다. 어찌 보면 연안과 효신의 시는 의미 없기로는 마찬가지다. 다만 두 사람의 태도가 다를 뿐. 연안은 아이들과 소통하며 시를 발표하고, 효신은 소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국어 선생님은 그런 효신을 향해 미소 짓는다. 그래서 효신은 튀는 존재가 된다.

그에 비하면 시은은 특별한 행동을 하는 학생은 아니다. 시은은 육상부이고, 교복을 입지 않고 등교할 때도 있으며, 그의 자리는 줄곧 맨 뒷자리다. 효신이 시를 발표하는 동안 시은은 편안하게 쿠션까지 베고 자고 있다(효신의 시를 듣고 깨어나긴 했지만). 우리는 경험상 시은 같은 운동부 학생들은 수업에 빠지는 일이 잦고 반 학생들과 교류가 적다는 것을 안다. 한마디로 시은은, 여고에 실존했다면 그냥 운동부라는 소속이 주는 상이한 느낌은 있을지 몰라도 튀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시은은 튀는 존재다. 연안의 표현대로라면 ‘끝내주는 애’인 효신과 친구 관계를 맺은 탓이다. 시은은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시은은 효신에게 ‘네가 창피하다’ 말하고, 효신과 헤어진다. 심지어 효신을 보고 고개를 돌리기까지 한다. 그렇게 튀는 존재이자 혼자가 된 효신은, 옥상에서 몸을 던진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스틸컷

나는 자꾸만 상상한다. 만일 효신이 자신이 쓴 시를 발표하는 도중에 웅성대는 반 친구들을 향해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면 어땠을까. 연안이 그랬던 것처럼. 그랬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효신이 튀는 존재가 아니었다면, 그러니까 둘이서 튀지 않고 사랑했다면 그들의 여고 생활은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환상적인 첫사랑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 그리고 그런 상상을 하는 나에게 문득 공포를 느낀다. 나도 모르게 획일화, 단일화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사회가 나에게 요구했던 것처럼. 효신이 죽은 이유의 가장 커다란 한 토막이 나에게도 내재해 있음을 알게 되는 그 순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무서운 영화가 된다. 그 영화 속에 나는 실재한다. 이미 오래 전에 내 안의 효신을 죽인 나는 이제 수많은 효신들이 죽는 것을 지켜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효신이 죽은 후 소녀들은 예민해진다. 화장실에서는 죽은 새가 발견되고 학교의 모든 문이 닫힌다. 교내를 가득 메우는 어느 여자의 웃음소리는 출처가 없으며 누군가는 효신의 환영을 본다. 이윽고 학교 천장은 효신의 얼굴로 뒤덮인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 그의 얼굴은 혼란스러운 학교 안을 조용히 살펴보다가 살그머니 사라진다. 어쩌면 효신은 귀신이 되어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저 자신이그 바라는 대로 다시 태어나는 날을 맞았을 것이다. 천장을 가득 메운 그 커다랗고 이상한 얼굴조차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효신이기도, 시은이기도, 그리고 학교 안에 존재했던 어떤 소녀이기도 했던 우리의 마음 속 지옥을 열고 조용히 들여다보다가 슬그머니 사라진 후 정성껏 따라 그린 영화임이 틀림없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스틸컷

나는 또다시 상상해본다. 이 영화가 나의 기대처럼 삼각관계를 그렸다면 어땠을까. 여고에 다니는 세 명의 소녀는 엇갈린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죄책감에 시달리며 죽은 소녀를 본다. 귀신이 된 소녀는 분노 속에서 남은 두 소녀를 해치워도 좋고 아니면 용서해도 좋다. 그저 그의 한이 풀린다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 이렇게만 상상해봐도 영화의 퀄리티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무슨 짓을 해도 아마 안 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영화가 나오는 사회를 바라게 된다. 여고는 그저 하나의 공간일 뿐이다. 여고생은 그저 학생들일 뿐이며 그들의 사랑은 평범하다. 하지만 사랑이란 것은 원래 뜨겁고도 복잡하며 사람을 미치게 만드니까 그에 따라 소녀들은 미쳐간다. 그런 공식만이 지배하는 사회와 세상을, 오늘도 상상만 해보는 것이다. 

내가 여고를 졸업한 지는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지금의 여고에서 두 소녀가 사랑하는 이야기를 쓴다고 해서 그 영화가 작가의 낭만 어린 개입 없이 공포영화로 끝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아름답게 그려진 지옥도 같은 이 영화를 보면서 아직도 현실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효신과 시은의 첫사랑이 사랑 자체만으로 존재할 수 있는 세계는 어디만큼 왔는가. 오고 있다. 오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믿으며 그 믿음의 근거를 스스로 마련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살아남은 우리가 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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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돌아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정하게 바삭바삭> 등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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