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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이지 말고, 페미니즘 돋보기

시간의 길, 켈리 레이차트

손시내|영화평론가 / 2019-12-16


< ZOOM IN >에서는 여성 영화, 감독, 배우, 캐릭터 등을 퍼줌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도 망설이지 말고, 페미니즘 돋보기! 

켈리 레이차트 ©다음

켈리 레이차트는 두 편의 단편 작업을 포함해 지금까지 10편의 영화를 연출한 미국의 여성 영화감독이다. 그의 열 번째 영화 <퍼스트 카우>(2019)는 지난 8월 텔루라이드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고 미국 현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제나 시네마테크 기획전 등을 통해 국내에서도 그의 영화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레이차트의 영화가 국내에서 정식으로 극장 개봉된 적은 없다. 저예산과 독립적인 작업 방식, 극장 수익 등 여러 가지 고려가 작용한 결과겠지만 그의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고 감상을 나눌 기회가 없었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레이차트의 영화를 소개하며 몇 가지 단상을 덧붙이는 것으로 이 지면의 연재를 시작하려고 한다. 그것이 여성 감독을 이야기하는 ‘전문적이면서도 새로운 시각’의 작업이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켈리 레이차트로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사건과 서사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출발하는 여정을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는 너무나 크고 아득한 세계 속에서 시간과 공간의 힘을 버티며 걷고 살아가는 이들을 바라본다.

레이차트는 <초원의 강>(1994)으로 이력을 시작하며 평단의 주목과 독립영화계의 큰 관심을 받았지만, 이후 두 번째 장편 영화를 만들기까지 여성 감독으로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몇 편의 중단편 작업을 거친 후 찍은 <올드 조이>(2006)를 시작으로 <웬디와 루시>(2008), <믹의 지름길>(2010), <어둠 속에서>(2013)까지 그는 지속해서 미국 서북부의 오리건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근작이라 할 수 있을 <어떤 여자들>(2016) 또한 미국 북서부 몬태나를 배경으로 한다. (<퍼스트 카우> 역시 오리건이 배경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주목했듯, 광활하고 거센 서부의 풍경이 레이차트 영화의 중요한 특징을 이룬다. 삼림지대, 강, 사막과 조용한 교외 지역 등지에서 펼쳐지는 일종의 로드 무비로 그의 영화를 설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인물들은 대개 그러한 풍경 속을 ‘지나가는 중’이지만 동시에 그곳에 묶여있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각자의 시간과 삶의 어느 시기를 지나는 중이면서 또한 거기 멈춰진 자들이다. 

영화의 구체적인 얼굴을 만드는 건 동시대 미국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이다. 레이차트의 영화는 가정을 만들고 주류 사회에 진입하는 것, 거주와 노동의 문제,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 안전망의 부재, 여성으로 살아가기, 급진적 환경 운동과 부딪치는 윤리적인 문제 등을 겪는 인물들을 그린다. 영화에서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연과 길 위에서 보낸다. 


<올드 조이> 스틸컷 ©다음

<올드 조이>의 두 친구는 숲속 온천으로 떠나는 짧은 여행길에서 이미 옛것이 되어버린지도 모르는 삶의 다른 방식과 즐거움을 생각한다. 레이차트와 꾸준히 함께 작업하고 있는 미셸 윌리엄스가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영화 <웬디와 루시>는 일자리를 찾아 알래스카로 향하는 젊은 여성 웬디의 외롭고 위험한 시간을 보여준다. <믹의 지름길>은 오리건의 사막지대를 배경으로 거주지를 찾아 떠나는 서부개척시대의 세 가족과 미덥지 않은 길잡이, 원주민의 아슬아슬한 동행을 그린다. 운동의 수단으로 수력 댐을 폭파하려는 <어둠 속에서>의 젊은 환경 운동가들은 폭력과 죽음이 새겨진 길 위를 다양한 표정으로 오간다. <어떤 여자들>의 네 여성들도 각기 다른 삶의 문제와 감정을 품고 길 위에 있다. 

이처럼 이들의 상황엔 충분한 드라마가 있지만, 서사의 구성적 힘은 약해서 어떠한 중심 서사로도 영화를 충분히 설명하긴 어렵다. 대신 우리가 보게 되는 건 주류적인 서사로 포착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얼굴과 감정의 결들, 인물들이 놓인 시간과 공간의 표정 그리고 무엇보다 풍경의 힘이다. 레이차트의 영화는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 자기중심적 시선을 구축하거나 그들의 고난을 낭만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러한 역동성을 포착한다.

<올드 조이>에는 두 남자의 우정과 여행에 으레 달라붙을 법한 감상적 정조가 거의 없다. 마크(다니엘 런던)는 가정을 꾸리고 이제 곧 아빠가 될 참이고, 여행을 제안한 커트(윌 올드햄)는 어색해진 것만 같은 둘의 관계를 되돌리고 싶다. 그럼에도 영화를 가득 채우는 건 삶에 대한 연민이나 향수가 아니라, 서로 다른 리듬을 가진 두 남자를 태운 자동차의 무심한 운동과 울창한 숲의 초록색, 온통 흘러넘치는 물소리 같은 것들이다. 길에서 벗어난 그들은 재탐색과 접촉의 순간을 만나고, 풍경은 말 없는 인물의 맨얼굴과 정념을 고요히 감싼다. 그 아래 일렁이는 감정들과 끝내 돌출되지 않는 긴장이 그들의 여정과 함께한다.


<웬디와 루시> 스틸컷 ©다음


<믹의 지름길> 스틸컷 ©다음

<웬디와 루시>와 <믹의 지름길>은 방랑하는 인물과 서부극의 주인공을 그동안 쉽게 만나기 어려웠던 여성의 얼굴로 바꿨다는 측면에서 일차적인 의미를 갖지만, 영화의 특별함이 단지 거기서 비롯되지만은 않는 것 같다. 두 영화의 여성 주인공들은 가난한 떠돌이, 물과 마을을 찾아 서부를 헤매는 유서 깊은 미국 영화의 인물들임에도, 결코 완성되지 않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시간과 시선을 위태롭게 감당하며 서 있다. 마땅히 머물 곳조차 없이 일자리를 찾아 알래스카로 향하는 웬디(미셸 윌리엄스)에겐 낡은 자동차와 반려견 루시가 전부다. 그러다 오리건의 어느 한적한 지역에서 차가 고장 나 발이 묶이게 된 그는 설상가상으로 루시마저 잃어버린다. 웬디의 과거나 사연이 아니라 그가 견뎌야 하는 시간이 <웬디와 루시>의 중심에 있다. 웬디는 그곳을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지만, 오리건의 풍경이 웬디로 하여금 그를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하는 요소들을 끝내 마주하게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목적도 의도도 없는 그저 비인간적인 힘일 것이다. 

<믹의 지름길>에서 인물들이 헤매고 또 헤매는 사막 또한 그런 힘을 지니고 있다. 21세기에 다시 서부극이라는 장르로 돌아가면서, 레이차트는 영화의 중심 이야기가 이라크 전쟁과 조지 부시와 관련돼 있다고 언급한 적 있다. 그걸 보여주는 인물인 길잡이 믹(브루스 그린우드)은 지름길을 장담하며 세 가족을 이끌지만, 책임감이 부족해 보이고 허풍을 일삼는 그는 가족들을 마을에 데려다 놓는 게 아니라 사막 한가운데서 헤매게 한다. 심지어 이들에겐 당장 먹을 물조차 떨어져 간다. 이때 말이 통하지 않는 한 원주민이 나타나고, 일행은 물이 있는 곳으로 그들을 인도할지도 모르는 그의 존재를 두고 다툰다. 그들은 고뇌하고 갈등하지만 대부분의 시간, 메마른 땅을 걷고 또 걸어야만 하는 건 변함없다. 여기엔 인간들의 사건과 시간 외부에 존재하는 풍경의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힘이야말로 이들 사이에 부딪히고 있는 의심과 갈등을 분출시킬 힘이다. 험준한 지형 탓에 계곡 아래로 내려보낸 마차가 박살 난 순간, 에밀리(미셸 윌리엄스)는 총을 들어 그들 사이의 균열을 가시화한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사막의 풍경은 여전히 견고하고 희망 없는 세계는 지속된다.


<믹의 지름길> 포스터

두 영화의 인물들이 견뎌야 하는 고난은 가혹하고 다층적이다. 웬디가 겪는 문제는 경제 위기로 인한 일자리 감소와 빈곤뿐 아니라 길 위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위협과도 연관돼있다. 그는 거창한 문제의식이나 커다란 목적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아무런 안전망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저 생존을 위해 매일 분투해야 한다. 사막을 걷는 이들 모두가 가혹한 시간 속에 있지만, 세 명의 여성들은 그들이 아내이며 여성이기에 부과된 제약에도 동시에 묶여있다. 누군가는 임신한 몸을 이끌고 사막을 걷고, 또 누군가는 남편에 의해 제한된 정보 속에 불안조차 표출할 수 없다. 그리고 끝내 어떤 사회적, 역사적 의미로도 환원되지 않는 끝나지 않을 풍경의 시간이 있다. 그 속에서 희망 없는 세계로의 여정을 지속하는 이들에게, 세상과의 대결이나 고난을 이겨낸다는 표현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문제들과 그 문제에조차 무심한 거대한 풍경 앞에서, 초라함을 견디며 자기 시간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부단한 걸음과 고단한 얼굴로,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시간을 살아간다. 

그들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일 뿐 아니라 혼자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들의 시선도, 이야기도, 시간도 다른 누군가를 손쉽게 포괄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나’ 아닌 이들의 시간 또한 그런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매일의 노동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주차 경비원과 정비소 주인(<웬디와 루시>)이 있고, 거듭된 물음에도 끝내 답을 주지 않고 오직 걷기만 하는 원주민(<믹의 지름길>)이 있다. <올드 조이>의 마지막,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두 사람은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인물들의 시간은 고독하고 거기엔 별다른 희망도 보이지 않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스며드는 어느 희미한 빛이 있다. 다 잘 될 것이라는 낙관도, 모든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비관도 없이 그저 계속될 삶을 비추는 그런 작은 빛이다. 그건 길 위에 멈추거나 길을 벗어나면서, 자기 삶에 겹쳐진 다양한 힘을 감각하고 혼자의 시간을 마주한 자들을 위한 일상의 빛일 것이다. 


<어떤 여자들> 포스터

<어떤 여자들> 또한 그런 빛과 함께 끝난다. 몬태나에 거주하는 네 여성이 등장하는 세 개의 에피소드가 영화를 구성한다. 레이차트의 다른 영화들처럼 이 영화의 각 에피소드를 이루는 건 특정한 이야기를 감싸는 인물들의 일상적인 시간, 풍경, 날씨와 같은 것들이다. 몬태나의 스산한 겨울을 배경으로 변호사 로라(로라 던), 시골에 집을 지으려는 지나(미셸 윌리엄스), 목장 노동자(릴리 글래드스톤)와 법대를 졸업한 시간제 교사 베스(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이야기가 차례로 이어진다. 이들 또한 외로운 혼자의 시간을 살아간다. 타인은 좀처럼 대답을 돌려주지 않고 매일의 삶은 고단하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후반부, 영화가 거의 끝에 다다를 무렵 잊을 수 없는 한순간이 등장한다. 도로를 조용히 달리던 목장 소녀의 차가 천천히 미끄러져 길을 벗어난다. 고요하고 적막한 표면 아래,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외로운 시간과 풍경의 힘이 부딪혀 만들어낸 운동 같다. 대답도 없이 무심한 세계에서 그저 매일 걷고 일하는 그런 움직임들로 지켜지는 일상의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비추는 희미하고 단단한 빛이 레이차트의 영화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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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영화웹진 리버스 필진,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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