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꿈을 향해 보내는 여성 감독의 러브레터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오마주>
퍼플레이 / 2022-04-25
<오마주>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오마주: 신수원, 그리고 한국여성감독] 부문 상영작 신수원|2021|드라마|한국|109분 |
<오마주> 스틸컷 ©전주국제영화제
꿈꾸는 이의 삶은 찬란하면서도 애달프다. <오마주>(신수원, 2021)의 주인공 지완(이정은)은 어렵게 만든 세 번째 영화마저 흥행에 실패하자 슬럼프에 빠져 시나리오 작업도 쉽지 않다. ‘돼가 맞아? 되가 맞아?’ 맞춤법을 고민하며 썼다 고쳤다를 반복하던 어느 날 그는 아르바이트 하나를 제안받는다. 바로 한국의 두 번째 여성 감독 홍은원(영화에선 ‘홍재원’으로 쓰였다)의 <여판사>(1962)를 복원하는 것. 빠듯한 제작비에 마지못해 승낙한 그 일은 어느새 지완에게 남다른 의미가 되어간다.
이곳저곳 흩뿌려진 작품의 흔적과 그 시절 예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던 지완은 60년대 여성 감독의 존재를 순간순간 느낀다. 부분부분 잘린 사운드와 장면을 복원하기 위해 시나리오와 필름을 찾아 나선 그는 감독의 딸과 오래된 사진 속 다방, 나이 든 편집기사, <여판사> 개봉 극장 등을 차례로 방문하며 영화에 점점 한 발짝 다가간다.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장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흥취와 낭만, 감독과 옛 시절을 함께한 이들이 전해주는 추억의 한 페이지는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길을 잃었던 마흔아홉의 여성 영화인은 ‘시네마 여행’을 통해 예술이란, 인생이란 무엇인가 돌아보고 자신의 길을 찾아 다시금 나아갈 힘을 얻는다.
<오마주> 스틸컷 ©전주국제영화제
신수원 감독의 장편 데뷔작 <레인보우>(2010)로부터 이어지는 이 작품은 영화에 관한 영화이자 꿈꾸는 이에 대한 영화다. “10년 동안 영화를 만들었는데 문득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오마주>를 만들기 시작했다”(제20회 피렌체 한국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소감 중)는 감독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분투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응원의 손길을 건네며, 앞서 그 모든 여정을 마친 선배 영화인들을 향해 존경과 경의를 보낸다.
60년이라는 세월의 거리를 두고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만나게 되는 두 여성 감독 사이에서 느껴지는 어떤 연결감은 ‘여성 예술인’ 그리고 ‘일하는 여성’이라는 공통점에 기인한 듯싶다. 그때든 지금이든 여성에게 가혹한 영화판을 버텨내고 자신의 이름을 건 영화를 만들어낸 이들이 자아내는 희미하면서도 끈끈한 연결은 굳이 연대감이라 말하지 않아도 자연히 실감하게 된다. 딸이 있었지만 친한 친구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던 60년대 여성 감독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은 2020년대의 여성 감독이다. 일하는 여성이 직업적 능력뿐만 아니라 엄마이자 아내로서 요구받는 역할들로 겪게 되는 고충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여성이다.
<오마주> 스틸컷 ©전주국제영화제
장편영화로는 첫 단독 주연을 맡은 이정은 배우의 탁월한 연기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완성도를 완성시키며 깊은 몰입감을 선사하는데, 감독과의 높은 싱크로율은 또 다른 관람 포인트로 삼을 만하다. 중년 여성이자 영화인으로서 그들이 나눈 공감과 이해가 영화에 절로 녹아든 것 아닐까. 그런 점에서 노년의 여성 편집기사가 지완에게 힘주어 건넨 말이 마음에 남는다. “자넨 끝까지 살아남아.”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에게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인 듯도 하다. 찰나의 환희와 제법 많은 고통이 함께하는 삶에 지칠 때도 많겠지만 어떻게든 버텨보자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여성들이여, 때로는 치열하게 때로는 설렁설렁 끝까지 살아남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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