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상실에서 피어난 희망

<까만점>

정새길 / 2021-10-07


〈까만점〉   ▶ GO 퍼플레이
이영음|2021|드라마|한국|52분
퍼플레이 [함께 프로젝트] 2탄을 통해 최초 공개된 <까만점>의 판매 수익금 50%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 후원합니다. 함께 프로젝트는 여성기업이자 사회적기업인 퍼플레이가 따뜻함을 나누고 이슈를 환기시키기 위해 영화의 판매 수익금 일부를 여성인권단체에 기부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지난해 1탄에서는 <아랫집>(이경미 연출, 이영애 주연, 2017)과 함께했지요. 올해 2탄에서는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다룬 <까만점>을 통해 “여성혐오 범죄를 함께 이야기하고 연대하며 이겨내는 순간들을 영화를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프로젝트 기간: 2021.10.01 ~ 2021.12.31


<까만점> 스틸컷

영화 <까만점>(이영음, 2021)은 하경, 다인, 지안 세 사람이 자신이 단톡방 성폭력의 피해자임을 인지한 뒤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들은 불법 촬영물 유포 피해를 겪고 목소리를 내려 하지만 그들을 향한 것은 연대가 아니라 조롱과 멸시였다. 영화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과 이에 대한 2차 가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거대한 강간 문화 속에서 성폭력은 나의 경험이자 내 친구의 경험이었고, 종국에는 여성 전반의 경험이 되어버렸다.

내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에 들어와 처음 맡은 업무는 ‘모니터링’이었다. 웹하드, 포르노 사이트, 남초 커뮤니티, SNS 등 다양한 온라인 공간에 대한 모니터링을 맡게 되었다. 사이버 공간을 잘 몰랐기에 순진했고, 처음으로 맡은 업무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더 컸다. 그랬기에 모니터링을 진행하며 받은 충격은 강력했다. 십여 개의 남초 커뮤니티에서 여성혐오는 일종의 놀이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여성혐오적 게시물들은 ‘유머 게시판’에 등록되어 인기 게시물이 되었고,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대상화해도 되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자신의 아내, 여자친구의 사진을 올리고 ‘인증받는’ 문화가 판쳤고, 그 인증의 ‘수위’가 강할수록 남성연대 속에서 추앙받았다.

<까만점> 스틸컷

불법 촬영물 유포 문제 또한 심각했다. 불법 촬영물 유포에 대한 형사적 처벌이 강화되었음에도 웹하드에는 피해 촬영물을 연상시키는 키워드들이 난무했다. ‘몰카’, ‘유출’ 등의 키워드가 붙은 영상들이 ‘합법적’인 성인물로 등록되었고, 사람들은 해당 영상이 얼마나 더 ‘몰카’다운지를 평가했다. SNS에서는 여성 연예인의 사진을 합성해 올리는 계정들이 수천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었다. 자신의 지인이라며 성적 합성을 부탁하거나 피해 촬영물을 판매, 구매하려는 계정들은 몇 개의 키워드만으로도 검색이 가능했다. 

절망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사회에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이 사이버 성폭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웹하드 카르텔, 남성 연예인들의 불법 촬영물 유포 사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보며 느꼈던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지’라는 생각은 어느 순간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야’라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여성의 일상이 포르노화되고 여성의 불안이 돈벌이로 이용되는 세상은 나와 우리들에게 좌절과 무력감을 학습시켰다. 세상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믿었던 사람,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상처와 절망은 어느 순간 우리가 이고 살아가야 할 짐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상실을 학습하게 되었다. 영화 후반부에 인물들의 몸에 새겨진 까만 점은 그들이, 그리고 여성들이 받은 상처이자 그들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상징일지도 모른다.

<까만점> 스틸컷

그러나 ‘점’은 상실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그들은 절망하는 동시에 삶을 꿈꾼다. 함께 모여 맛있는 떡볶이를 먹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다. 화를 내고 울기도 하지만 동시에 떠들고 서로에게 장난을 치기도 한다. 사건 이후, 그들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상처 입고 약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이제 그들의 세상은 바뀌었기 때문이다. 성폭력 이슈에 무감각했던 다인은 지안의 일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린다. 하경은 자신이 다인에게 상처를 줬다는 것을 인지하고 사과를 건넨다. 그렇게 그들의 세상은 변했다.

한사성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앞으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보았다. ‘너무 힘들고 괴로운데 이 일을 계속해도 되는 걸까’라는 고민이 계속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계속 이 삶을 살아가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함께 공감하고 분노해주는 동료들을 만났고, 이 폭력에 무뎌지지 않고 계속해서 성찰하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분노와 슬픔에 지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나만의 몫을 다해 세상을 바꿔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기에 이제는 까만 점에 희망과 연대라는 의미를 더하고자 한다. 그들이 바뀐 만큼, 그들의 세상도 바뀌리라 믿는다. 

세상의 모든 하경, 다인, 지안에게 연대와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페이스북 공유 트위터 블로그 공유 URL 공유

PURZOOMER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운동기획팀 활동가

[email protected]


관련 영화 보기


REVIEW

퍼플레이 서비스 이용약관
read error
개인정보 수집/이용 약관
read error

Hello, Staff.

 Search

 Newsletter

광고 및 제휴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