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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다

언니들이 죽을 때까지 아무도 알지 못한 (척한) 그 이유에 대해

<언니가 죽었다>

정다희 / 2021-01-28


〈언니가 죽었다〉   ▶ GO 퍼플레이
심민희|2018|드라마|한국|32분

“부적절한 정서, 내면적 우울감에 비해 표정이 밝고, 과도한 사회적 미소” 2020년 12월, 한겨레21 1342호 표지였던 하미나 기자의 ‘2030 여성 우울증’ 르포기사1) 일부다. 너무나 잘 지내는 듯 보이는 20대 여성은 밝은 겉모습 때문에 사망할 때까지 주변에선 그 이유를, 징후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마 <언니가 죽었다>(심민희, 2018)의 주인공 ‘우주’(전여빈)도 그랬을 것이다. 언니 ‘우희’(황승언)는 ‘갑자기’ 죽었다. 우주는 언니의 자살을 믿지 못하고 행적을 추적한다. 자살이 아닌 것 같다는 우주의 어렴풋한 짐작은 현실 부정 같지만, 우희의 죽음에 ‘의도치 않게’ 공모한 공간들을 지나치며 어쩌면 맞는 것처럼 보인다.

〈언니가 죽었다〉 스틸컷

뭐든 잘하고 착하고 예쁘고 똑똑하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우희에 대한 이 모든 형용사는 영화에서 직접 언급된다) 언니. 누군가는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부를 사람. 우주는 멋진 언니 우희가 자살하지 않았을 거라 믿는다. 우주는 우희가 있던 자리에 시차를 두고 위치한다. 언니의 죽음은 다른 가족 구성원의 죽음과 다르다. 언니가 지나간 궤적에 우주는 다시 20대 여성으로 호명되어 들어간다. 가까운 시간대를 공유하고 비슷한 집단으로 묶이며 그 자리에 미끄러져 들어가기에, 언니들의 자리는 그 뒤를 따르는 여성들에게 더 가깝고 중요하다. 둘은 비슷한 상황을 겪는다. 우주는 언니가 다니던 학원에 아나운서 지망생으로 잠입해 외모 평가를 듣는다. 언니가 가던 편의점에서 언니가 폭식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살을 빼야 한다는 아나운서 학원 선생님 말을 들은 우주가 언니의 약 봉투를 만진다. 식욕억제제와 신경안정제. 우주는 학교와 학원과 편의점과 약국을 오가는 또 다른 우희처럼 보인다. 우주는 우희처럼 되고 싶어 했지만, 우희만큼 그곳에 어울리지 못하고 자꾸 돌출해 튕겨 나간다. 학원을 박차고 나가고, 약사에게 따지면서 역할 수행에 튕겨 나가는 우주만 계속해서 살아있다. 얼마나 우연찮게 우주만큼 튕겨나가야, 그리고 그것에 단단해야 우희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언니가 죽었다〉 스틸컷

우주는 우희와 다르다. 무례하다. 자기 말로는 그렇다. 영화 중간중간에 배치되는 면접 장면에서 우주는 자신과 다른 언니의 유능함과 친절함을 칭찬한다. 언니처럼 되는 게 우주의 꿈이다. 우주처럼 많은 사람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자신의 커리어 방향을 잘 알고 유능하게 수행하는 능력, 타인에게 친절하게 대할 수 있는 사회성을 가지길 꿈꾼다. 우희조차 그때의 우희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주의 회상에서 우희는 마지막에 그런 말을 한다. “대학 같은 거 중요하지 않아. 너 하고 싶은 거 해.” 시험을 보러 가야 한다며, 누구보다 대학에 잘 적응하려 애쓰는 우희가 그런 말을 한다. 우희의 수첩에는 ‘돈 많이 벌어서 가족들과 서울에서 함께 살고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는 바람이 쓰여 있다. 가족의 기대와 자원을 투자받았기에 그것을 회수해내야 하는 ‘언니들’의 바람에 비해 취업의 길은 멀다. 우희가 커리어를 위해 다니고 있는 아나운서 학원은 학비가 천만 원이다. (그리고 그게 비싸지 않다고 강조된다) 끝없는 다이어트와 폭식의 굴레. 우희는 가족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가족에게 반납할 빚이 있는 사람처럼 성공에 매달렸다. 우희는 ‘착했다’. 자신이 자신을 대하는 것보다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학원에서, 학교에서 더 착했을 것이다.

〈언니가 죽었다〉 스틸컷

언니가 먼저 다녀간 공간은 언니가 떠났음에도 무색하리만치 상처 입거나 변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다. 언니의 방 한 켠에는 집에서 하는 운동법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우희의 ‘폭식’에 처방된 약 바로 옆이다. 고개를 돌리면 바로 거울이 있다. 외모 관리에 필요한 물건들은 너무 평범해서 보이지 않는 것처럼 공간에 녹아있다. 운동 카탈로그에 그려진 사람은 8등신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늘 같은 동작을 (그림이니까) 하고 있다. 이렇게 변함없는 몸이 되어야 한다는 듯이. 몸 관리에 연관된 물품은 사라지거나 변하지 않고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언제나 몸을 마른 상태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무가 너무 당연한 것처럼. 우희가 다니던 편의점 알바생은 덤덤히 우희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고 말하며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학원도 그대로다. 수강생이 죽었지만 직접 책임은 없기에 우주가 왔을 때도 사람만 바뀐 채 학원은 영업 중이다. 약국 주인은 우희가 죽었다는 소식에 잠시 나가서 오열하다 오지만, 여전히 약국 불은 켜져 있다. 우희가 오간 자리는 그대로고 그곳 사람들도 사실 그대로다. (슬프다고는 한다.) 우희가 자신을 할퀴기 전에 어떤 곳도 상처입히지 않으려 한 것처럼 사람들은 한결같이 우희가 착했다는 말뿐이다. 나는 이 변함 없음이 너무 슬펐다.

〈언니가 죽었다〉 스틸컷

착하다니, 착하지 않았다면, 우희는 애도하지 못할 사람일까? 우희가 자기 삶에서 엇나가 있던 것에 비해 우희는 주변에 잘 맞춰져서 아무도 우희가 죽어가고 있는 것을 몰랐다. 우리는 우희의 죽음을 스스로 삶에서 이탈하기로 결정한, 오롯한 자살로만 이해할 수 있을까? 자살의 이유를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끔 감추는 것도 우희가 실천해온 여러 ‘친절함’ 중의 일부라면 그걸 친절하다고 칭찬할 수 있을까? 타인이, 구조가 특정 집단을 깔아뭉개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직접 주먹을 휘두르는 것보다 이해하고 설득하려 드는 사람이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되는 거라면 그 구조는 제대로 된 걸까? 여성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는 우주의 면접 신과 추적 과정은 매끄럽게 교차하고 있는데, 그 매끄러움에 비해 사이사이 덜걱거리며 적당한 표정을 찾지 못하는 우주의 표정은, 어떤 자리에서도 끔찍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제대로 위치 지어지지 못하는 언니들 표정의 일부처럼 보인다.

  “너 너무 안 슬픈 거 아냐?”

우주는 이런 질문을 듣는다. 언니의 죽음도 제대로 슬퍼하지 못하는 여자 –그럼 어떻게 다루어야 이 죽음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다는 건지– 로 곡해되는 장면에서 우주는 오랫동안 고민에 빠진 얼굴이다. 우주처럼 나도 그곳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우주는 쾌활하다. 서울에 올라올 때도, 면접장에서도, 언니와 함께 있을 때 회상신의 표정도 밝다. 그런 캐릭터라고 일축하기에 우주는 자주 당황하거나 흔들리는 표정을 짓는다. 아무도 없는 곳, 언니가 살던 방에서야 울음을 터트린다. 우주 앞에 있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모른다. 아마 관객들은 발견할 것이다. 비참함, 슬픔, 무력감 같은 감정을 가졌다고 모두 앞에서 그런 얼굴을 할 수 없는 상황들에 대해서. 우리의 여러 감정은 여러 표정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때로는 반대의 얼굴을 한다. 

〈언니가 죽었다〉 스틸컷

우주의 마지막 질문을 가지고 우리는 당분간은 살아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정의로움’, ‘해야 할 일을 성취하기 위해 집중하는 능력’,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걸까? 라는 질문.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 걸까? 정한아 시인의 시집 『울프 노트』(문학과지성사) 속 시인의 말에서는, 띠동갑 동생이 언니가 자살할까 봐 걱정하며 눈길을 걸어 만화책을 빌려오는 모습이 담겨 있다. 언니는 세상의 적절한 자리를 찾느라 한없이 약해질 수도 있지만, 동생을 괴롭히는 자들에게 처참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자살을 보류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 날은 언니가 되어, 그리고 동생이 되어, 하지만 서로에게 기대어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며 질문을 이어나갈 것이다. 세상이 말하는 정의와, 해야 할 일을 성취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면, 그것에 나를 끼워 맞추는 것이 삶의 방향이 아니라면, 그럼 함께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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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미나, "죽거나 우울하지 않고 살 수 있겠니", 한겨레21, 13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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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수상한 소설 클럽 운영인. 매달 3편 이상 재미있는 소설을 써서 보내주자는 목표로 ‘비밀독자단’을 만들어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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