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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다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가는 초대장,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

<할망바다>

김승희|영화감독 / 2020-10-01


〈할망바다〉   ▶ GO 퍼플레이
강희진,한아렴|2012|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한국|5분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라는 하이브리드장르가 있다.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만들어져왔고 국내에서도 적은 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는 장르이다. 대표적인 단편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는 2005년 오스카 수상작인 <라이언(Ryan)>(크리스 랜드레스, 2004)이란 작품을 들 수 있다. 한때 애니메이션계의 천재라 불리었지만, 마약과 알콜 중독의 노숙자가 된 라이언 라킨 감독의 인터뷰를 담은 작품으로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살려 내면적 갈등, 불안, 우울 등 실사 영상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을 시각화하여 관객들이 라이언 라킨이라는 인물을 보다 다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할망바다〉 스틸컷

이번에 함께 나눌 <할망바다>(2012)는 강희진, 한아렴 감독의 작품으로 역시 단편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이다. 이 단편 역시 애니메이션이라는 미디엄의 특성을 살려 인터뷰이인 강두교 할머니와 해녀라는 직업을 5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에 상당히 깊이 있게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평소 대화를 나눠보기 힘든 해녀라는 직업을 가진 할머니라는 인물과 관객이 보다 쉽게 그러나 깊이 연결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할망바다〉 스틸컷

작품의 초반에는 인터뷰 상황이나 해녀라는 직업을 묘사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이 쓰인다. 실사 다큐멘터리였다면 수중촬영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감독은 애니메이션이라는 미디엄을 활용하여 짧은 시간에도 효과적으로 직업적 이해를 돕는 설명을 재미있게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작품의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화자의 심상을 시각화한다. 특히 해녀라는 직업에 따르는 불가피한 죽음과 그에 대한 불안이라는 감정을 어두운 밤 붉게 파도치는 바다로 표현해내는데, 이런 비언어적인 방식은 관객들이 잠시지만 바닷속에서 맞이하는 죽음과 그에 대한 두려움을 상상해 보게끔 하는 순간을 제공한다. 그 밖에 해녀들이 용왕님께 치성을 드리는 장면에서는 큰 바다거북의 얼굴을 하고 있는 무속인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가능한 재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할망바다〉 스틸컷

보통 인터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다큐멘터리는 화자의 캐릭터가 매력적이기도 하고 그가 하는 말에는 청자를 사로잡는 무엇인가가 있기 마련이다. <할망바다>에서 관객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부분은 화자인 강두교 해녀가 말로써 전하는 삶과 직업에 대한 태도이다. 작품을 재생하자마자 나오는 감독과 할머니의 대화는 관객들이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어버릴 만큼 시원한 바닷바람 같은 매력이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할머니의 이름을 물어보는 감독에게 “그냥 할머니, 이제는 다 잊어버려”라고 대답하는 강두교 해녀의 말은, 비대해지는 자아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요즘 세대의 우리에게 이름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손에 들고 있던 무거운 짐을 툭 하고 바닥에 내려놓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준다. 동시에 그런 게 어딨냐며 웃는 감독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편안함이 함께 전해져온다. 사실 이런 대화는 뒤따라오는 ‘할머니는 바닷속 커리어우먼 해녀이다’라는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듯 한 개인의 특징에 집중하기보다는 해녀라는 직업의 보편적인 얘기를 담고자 하는 작품의 의도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에만 집중하기에는 아깝다는 느낌이 든다. 시작부터 가슴에 숨구멍 하나 내어주는 대화가 시원스럽다. 

〈할망바다〉 스틸컷

그 뒤 해녀라는 직업은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뉜다는 설명이 따른다. 왠지 모르게 이런 다큐멘터리의 화자는 상군 해녀일 것 같지만, 감독이 섭외한 할머니는 하군 해녀이다. “잘 못 해. 그냥 해녀라고 해.” 이 한 마디 역시 참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솔직하게 무엇인가를 잘하지 못한다고 말하지 못하도록 압박한다. 혹은 완벽해지도록 몰아붙이게 만든다. 그렇기에 어떤 불안함 없이 솔직하게 “나 잘 못해”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꽉 쥐고 있던 밧줄을 살짝 놓게 만드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런 실바람 같은 자연스러운 대화들이 이 영화를 더 매력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준다. 

〈할망바다〉 스틸컷

강두교 해녀는 이어서 말하길, 사실 물에 들어가면 귀와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대부분의 해녀들이 약을 먹고 물질을 하는데, 얕은 데 들어가면 약을 안 먹어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태도 또한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비판하고 불가능한 완벽주의자가 되려 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곤 하는데, 그때 실질적으로 무리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몸이다. 아마 우리는 “약해 빠져가지고. 약 먹고 이겨내 상군 해녀가 되어야만 해”라며 자신을 한계로 몰아붙이는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 또 반대로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살다 보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라는 물음이 솟아오르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질문이 마음에 떠오를 때는 이미 무리를 한 뒤 한계점을 지나쳤을 때이다. 그러나 강두교 해녀는 무리하지 않는다. “해산물은 얕은 곳에도 있으니까.” 이런 현실적이면서 심플한 답변과 함께. 

〈할망바다〉 스틸컷

그러면서 계속해서 일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재미’라고 강두교 해녀는 말한다. 할머니의 물질은 유쾌하고 당당하다는 감독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내 일이 재미있던 적이 있었던가? 일하는 모습이 유쾌해지고 당당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들이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올라오게 만드는 강두교 해녀와 감독의 대화, 긍정적인 에너지가 작품 전체 러닝타임을 가득 채운다. 
<할망바다>가 2012년 당시 국내 유수 영화제에서 초청받고, 주변에서도 상당히 좋은 평들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또한, 그때 영화나 미술,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던 관객들에게는 ‘나도 저런 애니 다큐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었다.

〈꽃피는 편지〉 스틸컷

특정 인물의 인터뷰를 따라가는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쉽게 알 수 없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삶을 보다 넓은 시야로 바라보게 해준다. 어떨 땐 가상의 이야기보다 더 흡입력 있고,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감정적 연결의 깊이도 상당하다. 그러한 매력에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는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는 듯하다. <할망바다>의 공동 감독 중 한 명인 강희진 감독이 2015년에 만든 두 명의 탈북여성에 대한 단편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 <꽃피는 편지>도 퍼플레이에서 만나볼 수 있다. 또 유튜브에서 만나볼 수 있는 최미혜 감독의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 시리즈 <공원에서 만나요>(2017)도 추천한다. 요즘과 같이 불가피한 비대면의 시대에 이러한 방식으로 서로가 연결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발견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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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심심> <심경> 등 연출, <피의 연대기> 애니메이션 작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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