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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다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은?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홍재희|영화감독 / 2020-08-13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스테이시 패슨|2014|드라마|미국|96분|청소년관람불가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스틸컷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애비(로빈 웨이거)는 이혼전문 변호사인 케이트(줄리 페인 로렌즈)와 두 아이를 키우며 산다. 아들이 던진 공에 맞아 머리를 다친 애비는 피 흘리는 자신을 두고 일하러 가는 케이트가 못내 섭섭하다. 애비는 결혼 생활에 알 수 없는 허전함과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요리, 빨래, 아이들 뒷바라지까지 혼자서 도맡아 책임지던 애비는 주부가 아니라 욕망에 충실한 여성으로 살고 싶은데….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이 영화를 두고 < L-word >의 40대 버전이라 평했다. 그러고 보니 미국 서부 LA에 사는 레즈비언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였던 드라마 < L-word >가 장소를 동부의 뉴욕으로 바꿔 영화로 확장된 이야기 같기도 하다. 실제 < L-word >의 제작, 연출, 각본에 참여한 로즈 트로체가 이 영화에서도 프로듀서를 맡았고, 동성 배우자와 결혼한 스테이시 패슨 감독은 자신의 삶과 경험을 녹여낸 시나리오를 썼다. 

한국과 동시대인 뉴욕에서는 레즈비언 부부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거나 입양하여 키운다. 영화 속에선 두 엄마와 자녀로 구성된 가정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한국 사회에서는 꿈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결혼이 아닌 자유로운 성을 실험하는 섹슈얼리티의 해방까지는 가지도 않겠다. 이성애자 비혼 커플조차 존중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대한민국에서 동성 부부가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허락되지 않은 상상력일 것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언제쯤이면 한국 영화 속에서도 비혼 커플과 성소수자 커플을 일상 풍경으로 볼 수 있게 될까.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스틸컷

뉴욕에 사는 레즈비언 중년 커플인 애비와 케이트의 일상은 중년의 권태기를 겪고 있는 어느 이성애자 커플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이 다르다고 해서 사는 모습이 다르진 않다. 동성애자라고 유별난 일상을 살 거라 생각하는 것 역시 이성애중심적인 시각일 것이다. 열렬한 사랑과 낭만적 연애를 거치고 결혼에 안착한 커플들의 현실 속 삶은 이성애자나 레즈비언이나 대동소이하다. 이들에게 결혼이 주는 안정의 다른 이름은 ‘권태’다. 

영화가 시작되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여자 나이 마흔이면 얼굴과 엉덩이 둘 중 하나는 책임져야 해.” 곧이어 다른 여자가 그 말을 받는다.“마흔이 넘으면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해.” 곧이어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 헬스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는 중년 기혼 여성들이 떼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얼굴도 엉덩이도 책임지기 싫은 여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또는 둘 중 하나도 포기하기 싫은 여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뭣보다 여자는 마흔이 넘어서도 여전히 얼굴과 엉덩이의 매력으로 소비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포스터

사실 ‘매력’이란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매력은 자신 스스로가 느끼는 만족도가 아니라 내가 타인의 시선에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이는가에 달려있다. 아무리 얼굴과 엉덩이에 신경을 쓴들 남이 매력적으로 봐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일에 바빠 섹스에 무관심해진 케이트를 보고 애비가 자신에게 성적 매력이 없는 건 아닌지를 의심하며, 책임과 의무라는 반복되는 일상만 달랑 남은 결혼 생활에 권태를 느끼는 이유다. 

국내 개봉 제목이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이었지만 원제는 ‘Concussion’, ‘충격, 격동, 진동, 뇌진탕’이라는 뜻이다. 스테이시 패슨 감독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인생에서 섹스에 대한 비중을 키우면 키울수록 당신은 점점 더 이 엔도르핀을 원하게 된다.‘애비’는 너무나 목말라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목이 마르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였다. 영화 초반부, 뇌진탕은 그녀 안에서 그 ‘갈증’ 자체를 일깨운 것이다.”

<우리도 사랑일까> 스틸컷

불현듯 사라 폴리 감독의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2011)가 떠올랐다. ‘갈증’이란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열정 또는 끌림, 아마도 매혹일 것이다. 끌린다는 것은 매혹된다는 것이다. 한 눈에 반하는 것이며 홀리는 것이다. 이것은 이성이나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끌리는 데는 일 분 일 초가, 시간이 필요치 않다. 시선을 포획당하는 것.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눈을 뗄 수 없는 것. 감정이 격렬하게 요동치고 그저 단 한 번 쳐다본 것만으로도 사로잡히는 것이다. 매혹은 환상을 만들어낸다. 매혹은 순간을 기억하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을 왜곡하며 사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그러나 기대는 항상 배반당한다. 매혹이 현실과 만날 때는 필연적으로 실망을 낳는다. 매혹의 정체를 파악하면 아우라가 사라진다. 아우라가 사라지고 나면 비루한 현실이 기다린다. 열정만으로 매일을 살 수는 없다. 열정이 식으면 상대의 비범한 매력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의 권태가 된다.  낭만적 사랑의 실체다. 

사랑하고 연애해서 결혼에 골인하는 이야기. 아아, 지루하다. 언제나 그렇듯 이 각본은 결혼 후에 지속되는 일상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실상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낭만적 사랑이란 곧‘이성애’를 말한다. 일부일처 가부장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성애자가 아니라 해도 이 틀을 벗어난 상상력을 발휘하긴 쉽지 않다. 과거 낭만적 사랑이라는 과업의 완성은 오직‘결혼’에 있었다. 즉 결혼은 낭만적 사랑을 믿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다. 연애와 결혼에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필수다. 그런데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낭만적 사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최종적으로 ‘의례가족’만 남는 것이다.  

소유가 아니면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남자(또는 여자)와 그 소유를 사랑으로 착각하는 여자(또는 남자)가 만나 ‘결혼’하는 것은 뭘까. 또는 쾌락과 결혼을 분리하는 남자와 결혼이 아니면 쾌락은 안 된다고 믿는 여자가 이루는‘섹스’는 뭘까. 현실은 쾌락도 사랑도 자유도 아닌, 불감증과 욕구불만이 가득한 결혼 생활이다. 본질적으로 가부장제 사회의 일부일처제는 위선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 제도다. 단단한 결속과 신뢰라는 계약으로 서로의 성을 배타적으로 독점 소유하는 가부장제 결혼의 속내는 결국 사랑의 종말이자 섹스의 무덤인 것이다.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스틸컷

맨해튼 아파트를 개조하던 애비는 우연히 수리공을 통해 알게 된 루트를 통해 엘리노어란 이름으로 돈을 받고 섹스 상대를 받는다. 이제 엘리노어란 이름으로 이중생활을 하게 된 애비. 애비는 단, 두 가지 조건을 건다. 손님은 여성에 국한한다, 관계 전에 미리 카페에서 만나 커피 한 잔을 마셔야 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대상을 찾아 나선 애비가 섹스 전 손님과 커피를 마셨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누군가에게 섹스는 순전히 욕구 충족과 쾌락의 도구일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일상의 공허함을 달래줄 육체의 대화일 수도 있다. 두 여성 간의 섹스는 카페에서 만나 커피를 한 잔 마시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애비는 연령도 배경도 다르고, 레즈비언을 비롯, 이성애자인 기혼 여성까지 다양한 여성 고객을 만나 이런 저런 수다를 떤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교감한다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감정을 배설한다는 뜻이다. 교감과 배설은 둘 다 소통의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다는 섹스와 같다. 애비와 손님과의 섹스는 단순한 배설 차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트라우마에 시달리거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는 위로와 위안,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충족시키게 도와주는 섹스 테라피. 수다와 섹스를 통해 성적 만족감을 높이고 자존감을 되찾는 치유의 과정이다. 외형적으로는 분명 성매매와 같으나 거부감이 전혀 들지 않는다. 숱한 이성애 영화에서 남성이 여성의 몸을 돈으로 사서 자위 도구로 교환하는 성매매, 즉 여성의 몸을 남성의 배설 창구로만 사용하는 이성애 섹스와 영화 속 레즈비언 애비의 섹스가 확연히 다른 지점이다. 이런 섹스라면, 애비 또는 엘리노어처럼 섹스를 할 줄 아는 이라면 나 역시 기꺼이 돈을 내고 섹스를 할 의향이 있다. 안 될 게 뭔가.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스틸컷

성욕과 정념은 ‘남성의 욕구’가 아니라 ‘인간의 조건’이다. 성과 섹슈얼리티의 자유는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데 성별과 젠더의 차이는 없다. 사랑 없이도 섹스할 수 있다. 쾌락만을 위한 섹스도 가능하다. 원래 자유연애란 제도를 파괴하고 일탈해야 그 본래 목적을 완수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안전하게 기어들어가고자 각본대로 움직이는 연애에 무슨 삶의 충동이 생동하는 재미가 있겠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섹스 자체로 쾌락이 가능하며 결혼 제도 밖에서 사랑은 더 활활 타오르는 법이다. 

사랑과 섹스와 결혼의 삼위일체는 이미 무너졌다. 성과 결혼의 연관이 무너지면 '사랑'이라는 허상도 무너진다. 섹스와 결혼이 분리되면서 동시에 사랑과 섹스도 분리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반대급부로 우리는 섹스에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하는 한마디로 성의 과잉 시대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여전히 낭만적 사랑과 결혼은 여성을 옭아매고 특히 여성 스스로가 섹슈얼리티에 대해 자기검열을 하게 만든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성욕과 정욕, 사랑과 섹스, 연애와 결혼 등등, 이 모든 주제와 욕망 앞에서 느끼는 지극한 혼란과 욕구불만 상태는 우리의 현실이 바로 아노미라는 걸 의미한다. 결혼 제도의 공동화는 어쩌면 점진적인 성해방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성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 좋든 싫든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우리 시대의 성과 사랑이란 고정불변인 숙명이 아니라 항시 변하는 날씨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누구를 사랑하고 어떻게 사랑하든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따로 또 같이 춤을 추는 것(Take this Waltz)이 아닐까.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스틸컷

애비는 자신과 잤던 이웃집 여자 샘에게 묻는다.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당신, 남편이 여전히 열정적인데 왜?’ 그러자 샘은 당신이 그걸 몰라서 묻느냐는 듯 피식 웃는다. 사실 우리가 매혹을 느끼는 대상은 날마다 보는 익숙한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가장 섹시하고 매력적인 상대는 처음 본 낯선 사람이다. 그런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낯선 이와의 하룻밤을 꿈꾼다. 그런데 그 ‘누구나’에 성별과 젠더의 차이는 없다. 결혼 유무도 상관없다. 이 영화를 본 당신이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커피 한 잔은 당신의 섹스에 얼마나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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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메일> <암사자(들)> 등 연출, 『그건 혐오예요』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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