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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내 몸 사랑하기

<겨털소녀 김붕어>

유자 / 2020-05-28


<겨털소녀 김붕어>   ▶ GO 퍼플레이
정다히, 권영서|2017|애니메이션|한국|7분

<겨털소녀 김붕어> 스틸컷

겨드랑이 털이 머리카락처럼 길어진다면 어떨까? 머리카락처럼 숱도 많고 길이도 길어 휘날리기까지 한다면 말이다. 정다히, 권영서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겨털소녀 김붕어>(2017)는 이러한 기발한 상상력으로부터 출발한다. 영화는 ‘이상할 정도로 길게 자라나는 겨드랑이 털’ 때문에 마음고생 하는 한 사춘기 소녀의 성장통을 따뜻하고 유쾌하게 그린다.

주인공 김붕어는 이제 막 사춘기를 겪기 시작한 14살 소녀다. 그는 학교 수영실습 후 샤워장에서 거울을 보다가 자신의 겨드랑이에 털이 자라는 것을 발견한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다음날 털은 머리카락만큼 길게 자라버리고 예상치 못한 신체의 변화에 붕어는 점점 위축된다. 몸이 자라고 이성에도 조금씩 눈을 뜨는 시기, 짝사랑하는 같은 반 남자 아이 수혁이에게 자신의 비밀을 들키진 않을까 초조해하면서 붕어는 더욱 고달파진다.

<겨털소녀 김붕어> 스틸컷

도대체 ‘겨털’이 뭐길래! 7분 정도의 러닝타임 내내 이러한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붕어가 그토록 가리고 싶어 했던 ‘겨털’, 그것은 여성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겨드랑이에 나는 털일 뿐인 이 물질은 ‘겨털’이라는 오명까지 쓴 채 조롱되고 있었다. 이 조롱의 근원엔 겨드랑이 털에 대한 혐오감과 반감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혐오감은 여성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상적인 여성의 신체라는 허구를 전시하고 주입하는 미디어에서 흔히 보는 아름다운 여성들은 겨드랑이에 털이 ‘없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털이라곤 나본 적이 없는 듯한 그들의 깨끗한 겨드랑이는 아름다움, 아니 여성이라면 반드시 충족해야 할 필수조건 같은 것으로 제시되어 왔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흔히 보이듯 겨드랑이에 털이 덥수룩한 자연 상태의 여자는 흔히 성적 매력이 제거된 그로테스크한 몸뚱이로 묘사되곤 한다. 겨드랑이 털의 노출이 자유롭고 종종 남성성의 상징이 되기도 하는 남성들과 달리, 여성의 그것은 언제나 부끄러운 존재로서 조롱당한다. 그렇게 겨드랑이 털은 흉함의 상징이자 두고두고 회자될 굴욕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 수치심은 여성들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 족쇄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성의 겨드랑이 털은 금기에 가깝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 금기와도 같은 이미지 때문에 어릴 적부터 제모를 하기 시작한다. 털이 조금씩 자라면 면도기를 사용해 털을 밀거나 거뭇거뭇한 자국을 없애기 위해 집게로 이를 뽑아낸다. 면도기에 살이 긁혀 벌겋게 부어올라도, 피가 나도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상적인 여성상에 자신의 신체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여름이 되면 민소매를 입기 위해, 걱정 없이 반팔을 입기 위해 여성들은 겨드랑이 털을 없애야 하고, 이를 위해 레이저 시술과 같은 미용 분야에 돈을 지출한다. 여성의 겨드랑이 털을 조롱하는 문화, 부정하려는 문화는 이처럼 여성에게 주입되고 스스로 내면화하여 또 하나의 코르셋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겨털소녀 김붕어> 스틸컷

이러한 맥락에서 사춘기 소녀 붕어에게 겨드랑이 털은 그야말로 재앙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것도 머리카락처럼 긴 겨드랑이 털이었으니 말이다. 수영을 잘해 반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던 붕어는 겨드랑이 털이 부끄러워 입수 전 체조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한 여름에는 반팔 소매 밖으로 흘러내리는 털을 숨기기 위해 체육복을 입었다가 더위를 먹기도 한다. 자신감 넘치던 붕어는 겨드랑이 털 때문에 어느덧 소극적으로 변하고, 수혁이를 의식할 때면 그의 수치스러움은 배가 되고 만다.

물론 붕어는 겨드랑이 털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수혁이에게 삐져나온 겨드랑이 털을 들켰던 날 붕어는 잔뜩 화난 얼굴로 가위를 들고, 흔히들 하듯 그 털을 잘라내려 했다. 하지만 털은 붕어의 말을 듣지 않았다. 가위로 자르려던 찰나 붕어의 겨드랑이 털은 살아 움직이더니 자신을 위협하는 가위를 힘껏 밀쳐냈다. 

털이 살아 움직이다니! 작품은 살아 움직이는 겨드랑이 털이라는 만화적 상상력을 통해 붕어의 말없는 신체에 목소리를 부여한다. 붕어의 겨드랑이 털은 그 덕에 그렇게 하나의 생명체로서 움직이며 온몸으로 자신에 대한 부정을 부정한다. 작품은 애니메이션이라서 가능한 연출을 통해 자신의 신체를 부정하려는 붕어와 이에 맞서는 붕어 몸 사이의 다툼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붕어가 걱정돼 그의 방에 들어간 엄마 앞에서 겨드랑이 털은 붕어만큼이나 크게 성을 내고 있었다. 그렇게 잔뜩 뭉친 채 씩씩거리는 겨드랑이 털의 화난 얼굴은 결국 자신의 신체를 부정하고 이를 제거하는 것이 답이 될 순 없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겨털소녀 김붕어> 스틸컷

그렇다면 붕어는 어떻게 겨드랑이 털, 나아가 자신의 신체에 대한 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의 겨드랑이 털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주장하게 된 이상, 붕어의 선택은 결국 하나뿐이었다. 그건 바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사회가 주입한 수치심과 내면화된 자기혐오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을 테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작품은 그 극복 방법으로 주변인의 응원과 자기 긍정을 제시하는 듯하다. 겨드랑이 털과 한참 실랑이를 벌인 붕어에게 찾아간 엄마는 그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붕어가 참 예쁘다고 말한다. “안 예뻐”라고 답하는 붕어에게 엄마는 별다른 말없이 붕어의 속상한 마음을 헤아리며 뭉쳐 있는 겨드랑이 털을 곱게 다듬어 준다. 엄마의 따뜻한 손길 덕에 한껏 꼬이고 뭉쳐 있던 붕어의 겨드랑이 털은 곧 정돈된다. 

엄마의 공감 덕에 치렁치렁한 겨드랑이 털과 어느 정도 화해는 했지만, 더 중요한 건 붕어 스스로 자기혐오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겨드랑이 털 때문에 수영장으로 나가는 것을 망설이던 붕어는, 오히려 털의 손에 이끌려 탈의실 밖으로 나가게 되고 수혁이가 물에 빠져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붕어가 수혁이를 구하기 위해 헤엄치는 장면은 작품에서 가장 압권인 부분이다. 붕어가 더 빨리 헤엄칠 수 있도록 그의 겨드랑이 털이 모터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붕어가 그토록 감추고 싶어 했던 겨드랑이 털은, 수치심을 버리고 밖으로 나가자 비로소 수혁이를 구하기 위한 모터가 되었고, 망토가 되었으며, 천사의 날개가 될 수 있었다. 붕어가 움츠러드는 동안 발휘되지 못했던 능력이 붕어 스스로 몸을 당당히 드러냄으로써 가능해졌던 것이다. 

<겨털소녀 김붕어> 스틸컷

<겨털소녀 김붕어>는 이처럼 애니메이션이 표현할 수 있는 상상력을 통해 좀처럼 다뤄지지 않았던 여성의 겨드랑이 털을 조명한다. 그리고 ‘겨털’이라는 단어로 요약되는 자기 몸 혐오를 극의 주인공이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의지와 상관없이 겨드랑이 털에 대한 수치심을 내면화했던 붕어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빌어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된 털과 함께 싸우고 화해함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됐다. 정다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약점이나 시련이라 생각되는 것들을 만났을 때 잘 극복해서 강점으로 만들자”는 메시지를 작품에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1) 이러한 점에서 <겨털소녀 김붕어>는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그것이 갖고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강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것도 아주 유쾌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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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겨털소녀가 시련 속 당신을 응원합니다,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18년 11월호, 남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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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 대학 교지편집부에서 활동.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콘텐츠 제작자 지망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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