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위하여

<디서비디언스>

장영선|영화감독 / 2020-04-30


<디서비디언스>
세바스찬 렐리오|2017|드라마, 멜로/로맨스|미국, 영국, 아일랜드|114분

<디서비디언스> 스틸컷

랍비였던 아버지의 부고를 들은 로닛(레이첼 와이즈)은 혼란에 빠진다. 처음 보는 이와 화장실에서 섹스를 하고 공허하게 스케이트를 타는가 하면 자신의 옷깃을 이로 찢어버린다. 슬픔보다는 답답함이 먼저 전달되는 장면들이 지나고 나면 로닛은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향으로 떠난다. 셔츠 단추는 반드시 모두 채워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그의 고향이다. 

로닛이 먼저 만나게 되는 사람은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도비드(알렉산드로 니볼라)다. 뉴욕 생활에 익숙해진 로닛은 반가운 마음에 도비드를 껴안으려다가 문득 율법을 떠올리고 관둔다. 로닛이 이 엄격한 종교 윤리를 피해 뉴욕으로 도망을 친 동안,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에스티(레이첼 맥아담스)는 도비드와 결혼을 한 상태다. 에스티는 로닛과 어릴 적부터 친구인 것과 동시에 로닛과 연인 관계였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스스로 유대인 사회에 밝힌 후 다시금 유대교에 순응하여 종교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다. 

<디서비디언스> 스틸컷

영화의 주인공은 단연 로닛과 에스티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역시 이 영화에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이들에게 깃들어 영향을 미치는 것. 바로 종교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의 시대 배경이 현재가 맞는지를 찾아봐야만 했는데, 여자가 밖에 나갈 때 가발을 쓰고 머리카락을 가려야 할 정도의 엄격한 규율이 과연 현재에도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작가 나오미 앨더만의 데뷔작인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은 2006년에 발표됐으며, 나오미 앨더만은 1974년생으로 고압적인 영국 유대교 사회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한다. 작가가 성장한 곳인 영국 북부 헨던의 실제 도로와 가게 이름들이 책에 등장하며, 런던 유대교 사회에 대한 솔직한 비판으로 소설은 관심을 끌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종교적 규율들은 적어도 2000년대까지 지속되고 있던 사실을 기반으로 묘사된 것으로 보인다. 

로닛과 에디트는 각자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거나 서로의 사랑을 의심하는 단계를 이미 지나쳤거나 원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오직 종교다. 연인 관계임을 실토한 이후 둘은 마을에서 더 이상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 됐다. 로닛은 뉴욕으로 도망쳤고, 에스티는 종교에 순종하는 삶을 택했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법으로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억압을 외면하려고 노력했으나 그 방법들은 유효하지 못했다. 

<디서비디언스> 스틸컷

에스티가 결혼한 것을 알게 된 로닛은 고향에 와 있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무척이나 어색해하며 비행기 일정을 당겨 다시 뉴욕으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에스티는 그런 로닛을 만류하고 로닛에게 키스한다. 키스를 나눈 후의 두 사람은 무척이나 쉽게 예전으로 되돌아간 듯 친밀한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은 오직 서로의 앞에서만 솔직할 수 있는 부분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사실 본인의 전부라고 느끼는 순간이 곧 도래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현재는 과거를 똑같이 반복할 뿐이다. 길에서 나눈 가벼운 키스를 목격한 이웃이 그들의 관계를 여전히 의심하고, 에스티는 정해진 의식처럼 남편과 섹스를 해야 하며, 로닛은 마을에 올 때마다 차별에 숨이 막히는 한편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기묘한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그들의 마지막 선택은 영화의 제목과 상통한다. 그들은 결국 불복종한다. 에스티는 뱃속의 태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기 위해 이 사회를 떠날 것을 결심하고 로닛은 그런 에스티를 지지한다. 그들은 각자 고향을 떠난다. 


로닛과 에스티가 그곳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비단 그들의 성적 지향이나 서로를 향한 사랑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에서 묘사하는 유대교에서의 여성의 위치란 그야말로 기이할 정도다. 여성과 남성은 교회에 섞여 앉지 못한다. 남자는 교단과 가까운 구역에, 여자는 먼 구역에 각각 따로 앉아야만 한다. 로닛은 외동딸이지만 로닛의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교회에, 지위는 ‘영적인 아들’이라고 칭하는 도비드에게 남겼다. 여성들은 머리카락을 가리기 위해 가발이나 모자를 써야만 하고, 날짜를 정해 반드시 남편과 섹스를 하고 의무적으로 출산을 해야 한다. 영화 속에 정확히 나온 바는 없으나 엄격한 유대교 법칙에 따르면 월경 중일 때는 부정의 몸이라 하여 남편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고 정해진 정화 의식을 치른 후에 다시 남편과 합방할 수 있다고 한다. 믿기 힘든 일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일부 유대교에만 국한된 이야기일까? 세계 곳곳의 어딘가에서 다른 명칭 아래 다른 형식으로 비슷한 규칙을 행하며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어쩌면 우리의 문화 중에서도 일부는 이와 비슷할 것이다. 에스티는 말한다. 자신은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선택하지 못했지만, 아이는 본인의 삶을 선택할 수 있길 바란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소수자인 세상에서 사는 나는 그 말에 온전히 동의하기 어려웠다. 곧 태어날 에스티의 아이는, 과연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을까? 엄격한 유대교를 따라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 이라고 전제한다면 여성이 자신의 의사대로 100%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과연 존재하는가. 이것이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디서비디언스> 스틸컷

영화는 로닛과 에스티의 세세한 감정을 알려주기보다는 신념과 정체성이라는 굵직한 개념 사이에서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따라간다. 두 사람 사이의 로맨스는 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오직 둘의 연기에서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레이첼 와이즈와 레이첼 맥아담스의 훌륭한 연기는 이 영화에서 우선적으로 다루지 않은 로닛과 에디트의 세세한 감정들마저도 눈빛과 시선으로 전달한다. 

‘디서비디언스’는 레이첼 와이즈가 원작을 읽고 직접 영화로 제작하길 원해서 감독을 찾고 스태프를 모았다고 한다. 레이첼 와이즈는 여성들의 서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고, 그 정점에 있는 퀴어 영화에도 꾸준한 애정을 보이는 중이다. 처음 이 영화의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내 눈을 의심했다. 세계적인 스타인 두 배우가 퀴어 영화에 동반 출연하다니! 그 영화를 볼 수 있다니! 그러나 영화는 국내에서 극장 개봉을 하지 않은 채 곧장 온라인 시장으로 유통됐다. 나로서는 그 이유를 추측하기 어렵다. 이 정도의 스타 배우 두 명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어째서 개봉해주지 않은 걸까? 배우들의 눈빛과 시선이 중요한 영화인만큼, 스크린으로 보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여전히 퀴어 영화는 상대적으로 제작이 어렵다. 종종 배우가 퀴어 영화 제작에 의지나 애정을 갖고 있는 경우를 볼 때, 제작자로서 그리고 소비자로서도 너무나 반가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앞으로도 또 다른 ‘레이첼들’이 나와주기를 조용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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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돌아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정하게 바삭바삭> 등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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