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흐릿하고도 선명한 오늘과 내일
<오늘과 내일>
최민아 / 2020-04-23
<오늘과 내일> 스틸컷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앞을 헤쳐 나가는 그 순간(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흔히 말하는 나이, 성별, 지위를 불문하고, 혹은 성격, 가치관, 태도를 막론하고, 그 모양과 크기는 다를지언정 떼어낼 수 없는 인생의 과제로 어딘가 존재할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생 하은은 영화감독이 꿈이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카메라를 든 모습을 보며 자랐고 엄마와 함께 영화제를 다녔다.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릴 때부터 하은의 곁에는 영화가 있었고 어느새 자연스럽게 영화감독을 꿈꾸게 되었다. 일면 남다른 문화적 토양에 자연스레 영향 받아 일찍이 진로를 정했지만, 그런 하은에게도 ‘인생의 과제’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영화 <오늘과 내일>(유하은, 2019)은 감독인 ‘나’, 하은의 날들을 따라 그 어딘가의 앞을 향하고 있는 이들의 일상과 꿈을 그려나간다.
하은은 영화감독을 꿈꾸지만 예술 고등학교가 아닌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평일에는 날마다 늦게까지 학교 공부를 해야 하고 입시 준비만으로도 벅찬 하루하루가 계속된다. 제도권 교육 하에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 청소년의 일상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그리기 위한 또 다른 길을 찾아 나간다. 이는 자발적 수행이기도 하고 현실적 생존법이기도 하다. 하은은 영화와 멀어지지 않기 위해 여러 선택지를 찾는다. 다른 영화를 발견하기 위해 영화제에 방문하고, 새로운 동료들과 마주하기 위해 영화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며 직접적인 영화 만들기를 수행한다. 그는 이 과정들을 통해 다른 세계를 만나고 누군가에게 나의 세계를 내보일 수 있게 된다. 카메라를 든 하은에게 그렇게 영화는 자신을 스스로 발화하고 세상과 연결케 하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오늘과 내일> 스틸컷
하은이 ‘내일’을 살게 하는 ‘오늘’의 동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지만 그때마다 친구들의 응원과 지지, 공감과 연대에 힘입어 혼자가 아닌 함께 나아감을 배워간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할 때 주어진 상황 안에서 열심히 하면 된다고 다독여주는 이들이 있고, 저마다의 꿈을 그려나가는 현실이 막막하지만 비슷한 처지를 살피며 서로의 위로가 되어주는 이들이 있다. 같은 환경에서 다른 꿈을 꾸더라도, 같은 꿈을 꾸지만 다른 환경에 있더라도 이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고단함을 견디며 학교 공부도, 진로를 위한 활동도 열심히 하지만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은은 이들과 만나며 누구에게나 장애물은 있고 지금의 자신은 그 장애물을 뛰어넘는 과정에 있는 것이라며 나지막이 읊조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하은의 날들은 비단 ‘고등학교 2학년생’ 하은(과 친구들)의 모습에만 그치지 않는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 모두의 불안과 다름없을 것이다.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앞을 헤쳐 나가는 그 순간의 감각을 기억하는 나와 우리는 공감하고 응원하며 이들을 지켜보게 된다. 카메라에 기록된 열여덟의 날들은 반짝반짝 꿈꾸고 이내 곧 막막함에 흔들리지만 또다시 다짐하고 희망의 깃대를 세운다. 어쩌면 이 다짐과 희망은 그 시기를 지나온 이들에게 오히려 잊혀진 감각일지도 모른다. 엄마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자신의 언어를 찾아 나가는 이 영화가 나와 우리를 연결하고 사유케 하는 어떤 길잡이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과 내일> 스틸컷
하은은 수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트라우마가 생긴 후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을 달리 표현하고 싶어 영화감독의 꿈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를 만들며 어떤 흐릿함이 점차 선명함으로 변해가듯, 그에게 영화는 자신을 치유하고 애정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서 새로운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자신처럼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친구들에게 이 영화가 힘이 되었으면 한다는 고백의 말처럼, 그 감각을 알고 있는 모두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어줄 것이다.
어둠 속에서 카메라를 향해 “R=VD(Realization=Vivid Dream), 상승곡선 가자!”라는 자신들만의 주문으로 서로의 희망을 외치듯 그 반짝임이 현실에 가 닿기를, 그리고 지금의 날들이 지나더라도 이따금 그 주문을 꺼내어보며 또 다른 날들의 다짐과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PURZOOMER
인디다큐페스티발 사무국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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