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당신의 먹고사니즘

<해피해피쿠킹타임>

최민아 / 2020-11-12


〈해피해피쿠킹타임〉   ▶ GO 퍼플레이
유재인|2017|다큐멘터리|한국|9분

〈해피해피쿠킹타임〉 스틸컷

자신의 앞날을 내다보게 되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무수한 질문을 던지며 살아간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일생의 질문 중 하나는 ‘먹고 사는 문제’이다. 부(冨)의 크기와 관계없이, 가치관의 향방에 관계없이, 방식은 다를지언정 누구나 안고 살아가는 숙제일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고,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먹고살지 매일같이 고민한다. 그러나 무릇 당연한 삶에도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먹고 살기 위해 살아가고, 살아가기 위해 먹고 살지만, 생의 그 당연함 또한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먹고 사는 문제를 타당하게 할 자신의 생존 근거가 필요한 것이다.

영화 〈해피해피쿠킹타임〉(유재인, 2017)은 이 생존 근거에 대해 탐문한다. ‘나’의 혼잣말처럼, 혹은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 질문과 토로가 영화 전체에 흐르며 나를 둘러싼 생활과 생각을 펼쳐놓는다. 인생 실패한 것 같고 이룬 것도 없고 기회도 없는 것 같지만, 그런 자신에게도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아가야 하는지 질문을 멈출 수는 없다. 감독이자 화자인 ‘나’는 그런 가운데 내가 계속해내는 것, 해내야만 하는 것인 ‘쿠킹타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말한다.

〈해피해피쿠킹타임〉 스틸컷

각종 지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쓰며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나’는 허무함에 휩싸이지만, 그 허무함은 나의 몫일 뿐이다. 상담사조차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신의 심연은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많기도 해서, 빈말인지 진심인지 모를 말들을 무수히 주고받는다. 요새 뭐 하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누군가 물을 때면 ‘나’는 아무것도 안 한다고 답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다. 구구절절 설명하기 싫어 그렇게 말할 뿐이다. 어차피 서로에게 중요하지 않은 대화를 적당히 둘러댄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뭔가 하긴 하는데 잘 안 되는 걸 굳이 말하고 싶지는 않은, 그런 마음 말이다. 영화는 그런 마음을 무심한 듯 솔직하게 말하고, 우리는 언뜻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이 일상에서 쉬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해피해피쿠킹타임〉 스틸컷

‘나’는 인터넷 레시피를 찾아 오늘의 요리를 정하고,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한다. 이것이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나’의 일과이자 생존이다. 이는 자못 단순해 보이지만 생각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 혼자 먹을 밥상이라고 대충 때우는 것이 아닌,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한 끼를 꽤나 정성껏 차린다. 그렇게 나를 먹이고 치우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또다시 내일은 무얼 먹을지 계획을 세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러한 하루하루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이 영화의 ‘쿠킹타임’은 ‘나’의 일상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이루는 여러 행위의 단면이기도 하다. 무엇도 그냥 되는 일은 없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노력을 한다. 가장 일상적 행위를 경유하여 삶의 물음에 다가서는 방식은 보기보다 가볍지 않고, 이 영화가 말하고 보여주는 외피 또한 그와 닮아 있다.

〈해피해피쿠킹타임〉 스틸컷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도 먹고, 먹을 수 있고, 먹어야 한다. 그렇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밥값’을 하는 존재인지 묻고, 이를 증명하기를 요구한다. 하나하나의 작은 실패와 포기가 나를 만들어왔고 그 자체가 ‘나’이지만, 실패와 포기는 존재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상담사가 내게 목적의식이 없다고 말했던 것처럼, 목적이 있기에 실패와 포기도 있는 법이지만 이는 결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출퇴근하며 매연을 만들거나 누군가에게 스트레스 주지 않고, 작품 활동한답시고 쓰레기만 잔뜩 만들어내지 않는 자신은 오히려 합리적이지 않으냐는 ‘나’의 주장을 웃어넘길 수만은 없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스스로 선택한다. 공허하지만 공허함으로만 설명될 수는 없는 삶의 무게가 거기에 있다.

〈해피해피쿠킹타임〉 스틸컷

무언가를 향한 기대와 희망이 요원한 시대, 그러함에도 세상이 던지는 기준에 들지 않는 자는 패배감을 떨쳐내기 힘들고 하루하루 견뎌내듯 살아간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과 이미 나는 글렀다는 자조는 익명의 누군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결코 아니다. 사회가 부여한 이 지독한 늪에서 빠져나갈 길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지만, 이런 생각들을 하는 순간마저도 우리는 무언가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듯,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배는 고프다.

이 영화를 보며 우리 각자의 ‘쿠킹타임’은 어떻게 존재해왔는지 떠올려본다. 이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일 수 있고, 내가 행복하기 위해 하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실은 아무것도 아니어도 상관없다. 최소한의 삶의 영위가 최우선인 현실조건이 세상에 만연하지만, 우리는 응당 더 많은 ‘쿠킹타임’을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존재로서 이 영화가 존재하듯, 저마다의 ‘해피해피쿠킹타임’을 영위하기 위한 생존 근거는 그 자체로서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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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ZOOMER

인디다큐페스티발 사무국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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