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일단은 괜찮아

<에브리바디 올라잇>

장영선|영화감독 / 2019-12-26


<에브리바디 올라잇>(The Kids Are All Right)
리사 촐로덴코|2010|코미디|미국|106분

<에브리바디 올라잇> 스틸컷 ©다음

퀴어영화의 팬이자 제작자로서 이야기하자면, 퀴어영화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온도차는 놀라울 정도다. 일례로, 퀴어영화와 퀴어문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성 정체성 혼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90년대에 마쳤어야 할 이슈일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는 아직도 퀴어의 실존 여부에 의문을 갖고 있으며 이들에게 성 정체성 혼란 없이 존재하는 퀴어란 있을 수가 없다. 이렇게 온도차가 크다 보니 대체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더 많은 관객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지 늘 고민하게 된다.

<에브리바디 올라잇>(리사 촐로덴코, 2010)은 배우 줄리안 무어와 아네트 베닝이 레즈비언 부부로 출연해 2011 아카데미시상식 작품상, 각본상,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2011 골든글로브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다. 아울러 제작비의 3배가 넘는 수익을 거둬들인 영화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퀴어영화의 좋은 가이드 라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에브리바디 올라잇> 스틸컷 ©다음

영화는 닉(아네트 베닝)과 줄스(줄리안 무어)의 자녀들이 스크린에 등장하면서 시작된다(참고로 영화의 원제는 ‘The Kids Are All Right’이다). 조니(미아 와시코브스카)는 남자와의 첫 경험을 고민 중이고, 레이저(조쉬 허처슨)는 친구가 아빠와 함께 치고받고 바닥을 뒹굴며 격하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의 부재를 의식한다. 남매의 두 엄마는 완벽주의자 의사인 닉과 아직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한 도전적인 조경 디자이너 줄스인데, 두 사람은 아들의 친구를 부정적으로 생각해 만남을 만류하기도 하고, 딸이 생일선물 감사 카드를 쓰는 것까지 참견한다. 아이들은 이런 엄마들을 성가셔하지만 그래도 받아들인다. 엄마가 두 명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평범’한 가족이다.

조니와 레이저가 자신들의 생물학적 아빠, 즉 정자 기증자를 궁금해하는 것은 영화를 관통하는 갈등의 근간이 된다. 그들의 생물학적 아빠는 근처에서 식당을 하는 폴(마크 러팔로)이다. 폴은 평범한 남자인데, 이 남자의 태도 또한 이상적인 방식으로 ‘평범’하다. 폴은 아이들에게 솔직하면서도 친절하다. 아이들은 이런 폴을 좋아하게 되고 결국 그는 저녁 식사에 초대받는 것으로 이 가족에 공식적으로 ‘침투’하게 된다. 폴은 줄스와 닉 부부에게 아무런 편견이 없다. 게다가 직업을 찾고 있는 줄스에게 선뜻 일을 맡기기까지 한다. 정자 기증자가 이렇듯 이상적으로 평범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정자 기증이라는 일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니 말이다.) 레즈비언 부부와 그들의 아이들로 구성된 가족 모두와 친구가 될 가능성은? 하지만 그런 것들과는 상관없이 폴은 (영화 전개상) 이 가족이 갈등을 겪게 만드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는 이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뒤흔들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로 인해 가족 간 결속력이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레즈비언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에서 그를 어떤 갈등 요소로 이용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다.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폴을 레즈비언 부부의 관계를 흔드는 장치로 사용한다.



<에브리바디 올라잇> 스틸컷 ©다음

줄스는 여러 날을 안개 속에서 헤매듯 살아왔고 완벽주의자 의사인 닉 곁에 있다 보면 그런 자신의 모습이 더욱 희미해진다고 느낀다. 하지만 폴은 줄스가 진심으로 유능하다고 생각하며 줄스를 신뢰한다. 줄스는 폴로 인해 아주 오랜만에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줄스와 폴 사이의 기류가 바뀌는 것도, 둘이 키스하게 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그렇게 둘은 불륜에 빠진다.

불륜. 이 얼마나 흔한 일인가? 현실에 무수히 존재한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불륜은 수많은 영화에서 다루는 아주 흔한 갈등이다. 그들의 불륜은 결국 폴의 집에 초대받은 닉이 그의 집 화장실에서 줄스의 붉은 머리카락을 발견하면서 밝혀진다. 닉은 사실을 알게 된 후 주변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만큼 충격받지만 식사 자리가 어색해지지 않도록 끝까지 조심한다. 집으로 돌아와서야 닉은 울면서 줄스를 추궁한다. “Are you straight now?(이성애자가 된 거야?)” 줄스는 아니라고 부인하며 그저 다정한 말 한마디가 그리웠다고 답한다. 조니와 레이저도 결국엔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이는 폴에게도 알려진다. 모두가 상처받고 힘든 시기를 겪지만 줄스는 용서받고, 가족들은 일상으로 돌아간 뒤 더욱 굳건해진다. 정해진 결말이다. 그야말로 ‘할리우드 엔딩’인 것이다.

닉과 줄스의 가족이 이전보다 행복해지는 것에 대해 불만은 없다. 그리고 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다. 그러나 폴을 마크 러팔로가 맡아 연기한 것에는 어떤 필연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크 러팔로는 좋은 배우다. 그의 필모그래피와 알려진 사생활 역시 대부분 신뢰가 간다. 만일 이 역할을 덜 알려진 배우나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밝혀진 배우가 맡았다면 관객들은 지금보다 폴이라는 인물을 덜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배우와 배역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간이 순식간에 얼마나 많은 것을 연관 지어 판단하는지 알지 않는가. 이는 줄리안 무어가 맡은 줄스 역할과도 관계가 있는 해석이 될 것이다.


<에브리바디 올라잇> 스틸컷 ©다음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클래식’하다. 가족의 중요성이라는 할리우드의 오래된 가치를 향해 보수적인 방식으로 나아간다. 부부 사이에 제3자가 끼어들지만 그것은 잠시 바람에 흔들린 물결과 같은 것일 뿐 이들이 오래도록 지켜온 소중한 가정을 파괴할 수는 없다. 다만, 줄스와 닉은 레즈비언 부부다. 이들 사이에 제3자가 끼어든다고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여성이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라면 줄스가 바이섹슈얼(양성애자)이라는 사실을 영화 초반부터 밝혀줬어야 할 것이다. 클래식한 영화라면 응당 클래식하게, 말하자면, 레즈비언 부부 사이에 홀연히 나타나 그들의 관계를 흔들어놓는 것은 다른 레즈비언이어야 하지 않을까? 왜 그렇게 그리지 않았을까?

혼자서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비(非)퀴어가 퀴어에 비해 많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에서 ‘대중’을 위한 영화를 만들자면 폴은 남자여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결국엔 들고야 만다. 그의 존재로 인해 더 많은 이들이 이 부부를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면 말이다. 나 같은 관객들의 마음도 헤아려 ‘일부러 그가 정자 기증자라는 설정을 넣어줬구나’라고 안도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것에 누가 이견을 달겠는가. 이 영화는 좋은 각본을 좋은 배우들이 훌륭하게 연기하고 그것을 안정적인 연출이 뒷받침해주는 영화다.

이 영화가 퀴어에 대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원제에서 밝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The Kids Are All Right’. 비록 닉과 줄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지만 조니와 레이저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맞이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들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영화 제목처럼 우리의 다음 세대도 퀴어영화에 대해 그럴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때까지 더 많은 퀴어영화가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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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돌아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정하게 바삭바삭> 등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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