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읽다

무명의 자국을 기억하고 말하는 방법

<옥상자국>

최민아 / 2020-05-07


<옥상자국>   ▶ GO 퍼플레이
양주연|2016|다큐멘터리|한국|30분

<옥상자국> 스틸컷

사회와 역사를 알수록 내가 알지 못했던 누군가에게 빚지며 살아가고 있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기억과 기록에서 지워져 버린 언젠가, 시선이 가 닿지 못한 어딘가, 내가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온전히 지탱하여 내가 딛고 있는 세상을 이뤄온 내가 알지 못하는 이름들. 그 무명의 이름들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고 말해야 할까. 이를 깨닫게 되기까지 시간의 간격을 어떻게 좁혀나갈 수 있을까. 살아가는 동안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이 질문을 떠올려본다.

영화 <옥상자국>(양주연, 2015)은 외갓집 옥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총탄자국에서 시작된 1980년과 현재의 광주에 대한, 혹은 ‘나’의 외할머니에 대한 기록이다. 1980년 이후 태어난 감독은 어린 시절을 주로 광주의 외갓집에서 보냈다. 교과서에 나오던 ‘광주시민’이라는 말은 나의 가족과는 상관없는 말이었고, ‘도청’은 자신에게 별다른 감흥이 없던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갓집의 ‘옥상자국’이 궁금해졌다. 할머니에게 자국에 대해 물었고, 무심한 답으로 돌아오는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처음으로 할머니의 지난날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화를 청하는 손녀에게 할머니는 5·18에 대해 너무 파고들지 말라고, 평범하게 살라고 말할 뿐이었다.

<옥상자국> 스틸컷

1980년 광주, 그 해 1월 지금의 외갓집이 만들어졌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이자 상징인 전남도청과 양동시장 사이 위치해 있던 외갓집에는 할머니와 가족들의 젊은 날이 어려 있다. 빛바랜 사진을 보며, 그들이 바라보았을 풍경을 내다보며, 감독은 지난 시절 이곳의 가족들이 궁금해졌다. 익숙한 존재들의 낯선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경험으로 ‘1980년 5월 광주’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지나온 다른 사람들,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그 도시의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거리감으로 그 날을 담아낸다. 감독도 이처럼 그 날의 광주를 자신의 경험 안에 인식해왔지만, 일상 가까이의 흔적을 통해 이것이 나와 멀리 있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말을 건네기조차 쉽지 않았던 할머니의 기억은 점차 손녀의 카메라 앞에서 그날들의 이야기로 나타난다. 양동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던 그 날로부터 되짚어나가는 하루하루는 40여 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생생하여, 잘 모른다고 말하던 할머니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날들의 상황과 감정이 선명하게 펼쳐진다. 손녀에게 꺼내 보이던 기억의 발화는 시장 상인들과 이모할머니를 만나며 개인사를 넘어 공동의 기억으로 점차 확장되어 간다. 이처럼 변화해가는 할머니의 모습은 ‘손녀’의 카메라이기에 가능했다고 우리는 쉽게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수의 다큐멘터리 카메라가 감독의 사적 관계로부터 출발함에 있어 이를 한계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기에’ 가능한 기록과 성찰이 존재하고, 쓰이지 않은 역사를 기록하는 유일 존재로서 이들 카메라의 유의미함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옥상자국> 스틸컷

할머니의 증언은 현재의 광주 도심을 비추는 푸티지와 함께 흐르고 그 위로는 당시 대한뉴스의 오디오 클립이 더해지며, 이질적이지만 수렴되는 기이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시민군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거리, 시민은 ‘폭도’를 숨겨주지 말라는 뉴스 음성, 그리고 당시의 공포가 어려 있는 할머니의 증언. 이 소리들은 당시 항쟁의 중심이었던 금남로 거리 곳곳의 흔적들과 겹쳐지며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이 도시의 아픈 역사를 일깨운다. 민간인의 피해 없이 폭도의 생포와 사망만이 남았다고, ‘소요’가 가신 광주시가 활기를 되찾았다고 말하는, 누군가에 의해 쓰인 또 다른 역사와의 교차를 통해 개인들의 역사가 어떻게 무참히 지워져 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들 개인의 역사는 그 시간을 함께 살아낸 이들과의 기억으로 존재한다. 기억하기 싫지만 사라지지 않는 기억,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제는 사라져버린 존재들, 모두가 개인의 역사 한 켠에 자리해 왔지만 ‘역사’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기록이 필요하고 이는 강력한 힘을 갖는다. 직접적으로 항쟁에 나서지 않았더라도 모두가 시민군의 편이었고 광주시민은 전부 5·18의 희생자라는 말, 광주시민은 다 한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는 그 말. 개별의 존재들이 증명하는 그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해야 함을 일깨우는 소중한 목소리이다.

<옥상자국> 스틸컷

옥상자국은 누가 남기고 간 것일지, 군인을 향해 총을 겨눈 이는 누구였을지, 질문은 이로부터 시작했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답은 이로써 끝나지 않는다. 외갓집에는 옥상자국이 여전히 남아있고 할머니의 기억은 곧 사라진다는 감독의 마지막 내레이션을 경유하며, 그렇다면 이 기억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와야 할 것이다. 한 여성의 삶과 역사를 통해 광주를 바라보고, 광주의 역사를 통해 한 여성의 삶을 돌아보는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을 비롯하여 경험하지 않은 세대 저마다의 현재적 질문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영화의 첫머리에서 감독은 말한다. ‘모든 시간은 지나간다. 지나간 시간 중에는 기억되지 못하는 시간도 있다.’ 무명의 자국을 어떻게 기억하고 말해야 할지 다시금 이 질문을 떠올리며, 일상과 역사가 무관하거나 나와 멀리 있지 않음을 깨달아 나가야 한다. 이로부터 기억의 복원은 시작된다.

페이스북 공유 트위터 블로그 공유 URL 공유

PURZOOMER

인디다큐페스티발 사무국 활동가

[email protected]


관련 영화 보기


REVIEW

퍼플레이 서비스 이용약관
read error
개인정보 수집/이용 약관
read error

Hello, Staff.

 Newsletter

광고 및 제휴문의